인물

삼우당三友堂 이제백李齊白<처사,선비>
매화와 동백과 수석을 사랑한 “삼우당三友堂 이제백李齊白”


   이제백(1682~1759)은 조선 중기의 유학자. 자는 백여白汝. 호는 삼우당

三友堂. 본관은 광산. 아버지 필재必栽와 어머니 창녕 조씨의 아들로 광

주 북구 운암동 황계리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8세에 부모를 모두 잃고 의지할 곳이 없어 외가에서 자라다가 장

성하여 고향으로 돌아왔다. 천성이 어질고 몸가짐이 온화하였으며 정성과

공경으로써 선현을 받들었다. 먼저 조고祖考의 묘소를 정비하고 손수 비

문을 써 후세에 전하도록 하였다.

문학에 뛰어나고 시문을 잘 하였지만, 과거 보는 것을 탐탁하게 여기지

아니하였고, 집안이 가난하였지만 이를 마음에 두지 아니하였다. 시문을

짓고 풍류를 읊는 사람들을 높이 받들고 귀하게 여겼기에 교우들도 모두

문인과 운치가 있는 인사들이었다.

그는 집에 매화와 동백을 심고 수석水石을 그 아래에 두고 즐겨 구경하

면서 집의 편액을 삼우당이라 써 걸고 호를 스스로 삼우당이라 하였다. 그

까닭은 매화의 청결함과 동백의 곧음, 돌의 견고함을 벗하고자 하는 뜻을

취함이었다.

  그는 마을의 정신적 지주로 애경사를 주도했던 어른 역할을 하였다. 마

을의 규약으로 덕업상권德業相勸, 과실상규過失相規, 예속상교禮俗相

交, 환난상휼患難相恤의 남전여씨藍田呂氏 향약 4대 강령을 바탕으로 조

직해 규율 등을 정해 시행했다.

 그는 『삼우당유고三友堂遺稿』 2권을 남겼다. 권1에는 오언절구 10수

와 화답시 21수, 오언율시 2수와 화답시 34수, 칠언절구 6수

와 화답시 20수, 칠언율시 2수와 화답시 4수 등을 남겼고,

특히 무등산 유람기인 유산록을 남겼다. 권2에는 만輓 2편,

행록과 행장, 실적, 발문 등이실려 있다.




출전 북구 역사인물, 삼우당유고, 광주읍지, 광산이씨선세유집, 남도 정자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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