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후해後海 송정묵宋廷黙<처사,선비>
경술국치의 울분을 품고 산 재야 지식인 “후해後海 송정묵宋廷黙”

 

 송정묵(1855~1927)은 한말 일제강점기 유학자. 자는 명오鳴吾. 호는 후

해後海. 초명은 황묵晃黙. 본관은 홍주. 증조부는 송수호宋守浩, 조부는

송찬현宋贊賢, 부친은 송내규宋來奎이다. 광주 북구 용두동 거상 마을

출신이다.

  그는 타고난 품성이 강직하고 품기가 고결하였다. 노사 기정진(奇正鎭

1798~1879)에게 10년 정도를 배운 문인으로 당시 재야지식인으로 삶을

살았던 처사였다.

  노사 손자 송사 기우만과 도의로써 사귀면서 동문수확한 오산梧山 이

용헌(李龍 憲, 1851~1895) 등이 들려 시를 남겼으며 난와難窩 오계수吳繼

洙, 춘담春潭 기동준奇東準, 수헌睡軒 기경연奇慶衍, 익재益齋 고재붕高

在鵬, 후석後石 오준선吳駿善, 외당畏堂 고한주高漢柱, 현와弦窩 고광선

高光善, 신종재愼終齋 기동겸奇東謙 등과 서신을 통해 교류했다.

당시 재야지식인으로 삶을 살았던 처사 송정묵은 낙호樂湖라 자호하고

정자 낙호정樂湖亭을 짓고 경술국치의 울분을 머금고 죽지 못해 사는 유

민이라 칭하였다. 뒤에 후해後海로 고쳐 공자의 부해浮海를 사모하고 9대

조 해광海狂 송제민宋齊民의 후손이라는 의미를 담고 그곳에서 학문을

강구하며 유유자적했다.

 국상을 당한 뒤에 국가의 원수를 갚지 못하자 끝내 복을 벗지 않았으며

타고난 품성이 고결하고 강직하였다.

그가 쓴 기문과 시가 광주 남구 현와弦窩 고광선高光善의 은거처 엄이

재기掩耳齋記, 장성군 진원면 김영원金榮源이 4형제의 교유처로 지어 지

냈던 사회정四會亭記, 진원면 삼성산三聖山에 조선말기 학자요 의병장,

위정척사론衛正斥邪論에 입각하여 의병을 이끌었던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1846~1916)의 강학터 삼산재기三山齋記, 삼호정기三

湖亭記, 낙호정운次樂湖亭韻, 물염정논勿染亭論重 등이 현판으로

남아 있다.

문집으로 5권 1책, 석인본으로 1956년 간행되었던 후해유고後海

遺稿가 있다.



출전 후해유고, 지산 향토지리지, 남도 정자기행.


-자미(紫薇)골 역사인물-읽어보기

top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