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지사芝史 범재풍范在豊<현대인물>
향약을 실천하는 광람계를 창계한 “지사芝史 범재풍范在豊”


 범재풍(1885~1945)은 일제강점기의 면장. 호는 지사芝史. 본관은 금성.

난계灡溪 문섭文燮의 아들로 광주군 대촌면 월성리에서 출생하여 지산

면 생용리 지내池內 마을에서 살았다.

1910년 한일 늑약 후 최초로 토지 조사사업의 목적으로 추진된 지적측

량사업地籍測量事業에 참여하기 위해 광동측량교습소光東測量敎習所

에 입학해 측량기술을 습득하였다.

그는 부모 생존할 때 효행은 물론, 모친이 작고 후 35년간 매일 아침에

성묘하는 지극한 효행을 다하였다.

면민들이 추대하여 1916년 32세에 광주군 우치면장을 시작으로 인접

본촌면을 병합한 지산면장까지 줄곧 18년 동안 면민의 공복으로 일하였

다. 그는 덕으로 면민을 지도·교화하고 향약의 4대 덕목을 면정의 기본으

로 실천함으로써 그 공로가 면민의 경모敬慕를 받아 1932년 6월 5일에 광

주 북구 생용동 산 93번지에 면민들이 면장범재풍기념비面長范在豊紀念

碑를 건립하였다. 비의 규모는 높이 228㎝, 폭 48㎝, 두께 19cm이다.

그는 향리에 덕을 선양코자 광람계光藍契를 1918년 당시 광주군 우치

면장에 재직하고 있을 때 우치 본촌면 일대의 주민 61명이 백미 1말씩을

갹출하여 계원으로 창계하였다. 계원의 거주지를 보면 생룡, 용전, 태령,

수곡, 입암, 회룡, 단지, 거진, 지야, 본촌, 용두, 양지, 일곡 등 광범한 지역

을 포함하고 있다. 특히 광람계라는 명칭의 의미는 우리 고장 광주에서도

중국의 남전여씨藍田呂氏 향약의 전범典範에 따른 유교적 이상향을 건설

해 보고자 하는 목적으로 시작된 것으로 큰 의미를 갖는다.

광람계는 지금까지도 존속되고 있어 1900년대 초기 계의 형태와 현재

의 계를 비교 검토하는데 하나의 좋은 사례가 되고 있다.

1968년 광주시 북구 용전동 601-9(용전 마을 입구)에 광람계기적비光

藍契紀蹟碑를 세워 그 뜻을 기려오고 있다.


출전 지산 지리지, 면장범재풍기념비, 광람계기적비, 북구 문화유적.


-자미(紫薇)골 역사인물-읽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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