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독립운동가 조공찬曺公贊<독립운동가>
광주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조공찬曺公贊


 조공찬(1880~1962)은 대한 독립운동가. 본관은 창녕昌寧. 광주 북구

북동(북문통) 출신이다.

그는 북문통에서 단야(鍛冶:대장장이) 일을 하였는데 3·1만세 운동에

참여하여 징역 4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광주에서의 3·1만세운동은 김복현이 독립선언서 수천 매와 「경고 우리

2천만 동포」라는 제목의 격문 약 100장과 「선언서」라는 제목으로 최팔

용 외 10명이 연명한 인쇄물 약 150매, 조선 독립을 노래한 독립가 약 100

매 및 국민대소집청원서 약 10매를 가져오면서 시작되었다.

3월 6일 광주에 온 김복현(김철)은 김강·송흥진·서정희와 숭일학교 교사

최병준과 상의하여 3월 10일 광주 작은 시장에 모였다. 김복현이 독립선언

서의 취지를 연설한 후에 독립 만세를 부르기로 하였다. 예정 시각이 되자

김복현·김강·서정희 등은 광주교 아래의 강변에 가서 모여 있는 수백 명의

군중과 함께 ‘조선 독립 만세’를 외치고 독립운동의 시작을 선언하였다.

각자 태극기를 흔들고 만세를 부르면서 군중과 함께 강변을 따라 작은

시장으로 출발하였다. 양림리 방면에서 송흥진을 중심으로 기독교인과 숭

일학교 수피아 여학교 학생들이 시위대의 앞에서 광주천을 따라 행진하

였다. 그는 만세 시위대와 함께 광주우편소 앞으로 행진하였다. 이때 일본

기마 헌병대와 소방대·재향군인회 소속 회원들까지 가세하여 강제진압에

나서자 시위대는 해산되었다.

그는 3월 10일 광주의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었다. 1919년 4

월 30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그 후 가업을 이어 살다가 1962년 서거하였다.

정부는 2018년에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


출전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광주지방법원 판결문


-자미(紫薇)골 역사인물-읽어보기

top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