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독립운동가 박창규朴昌奎<독립운동가>
광주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박창규朴昌奎



 박창규(1887~미상)는 대한 독립운동가. 본관은 밀양.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대포리 출신으로 1900년 초에 광주 북구 중흥동으로 이주하여 농사

를 짓고 살았다.

기미년 서울에서 일어난 3·1운동의 호응으로 광주에서는 1919년 3월 10

일 부동교 아래 강변 모래밭에서 ‘독립 만세운동’을 일으켰다.

이날 만세운동의 중심에는 학생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숭일학교와 광주

농업학교 학생들은 사전에 독립선언서 배포, 수피아 여학교 학생들은 태

극기 등을 제작했다.

그는 이날 독립 만세운동의 소식을 듣고 광주교에 가서 만세 행렬에 동

참하여 대한 독립을 외쳤다. 그는 시위 군중과 함께 광주지방법원, 광주경

찰서 등 일본 관공서를 방문하여 대한 독립을 주장했다.

이때 일본 당국자들은 독립 주장을 무력으로 짓밟았다. 여기서 적지 않

은 시위 참가자들이 폭행을 당했다. 그는 일본 당국의 무력 진압과정에서

체포되었다.

일본 경찰의 가진 고문과 심문 끝에 4월 30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고, 감옥살이하고 풀

려났다.

정부는 2019년에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


출전 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2020년 발간), 광주지방법원 판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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