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명곡明谷 노석중盧錫中<독립운동가>
독립운동 자금을 모았던 대동단의 회원인 명곡明谷 노석중盧錫中



 노석중(1875~1954)은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자는 순익巡益.

호는 명곡明谷. 보명譜名은 석우錫宇. 초명初名이 석중錫中. 본

관은 광주. 절충장군折衝將軍 돈규敦奎의  아들로 광주 북구 일곡동 출신이다.

3·1운동 직후 독립운동에 투신해 서울에서 신덕영, 노형규와 만나 대동단大同團에 가입

했다.(동아일보 1921년 5월 1일자) 대동단은 3·1독립운동 직후 민족적 대

동단결과 실력양성을 표방하고 민족운동의 구심적 역할을 담당할 것을

목적으로 전협全協, 최익환崔益煥 등이 주도하여 결성된 비밀결사 단체

였다.

1920년 7월부터 광주 전남지역에서 군자금 모금을 중심으로 활동을 본

격화했다. 그 시기에 대동단과 광주 전남 지역의 단원들 사이를 잇는 연결

고리 역할을 하였다. 이후 그는 광주 전남 지역에서 자산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신덕영申德永 등과 함께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했다. 그 수단으로

서울에서 대동단 총재 김가진金嘉鎭의 명의로 포고문을 만들어 전라남도

광주군 본촌면 일곡리 노종룡盧鍾龍 등 광주의 부호들에게 각각 우송하

여 출금을 요구했다. 이때 그의 아들인 노상영도 참여했다.

또한 동지 포섭에도 힘을 쏟아 조직을 확대하여 가며 대한민국임시정부

와도 연락하며 활동하다가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1921년 5월 31일 광주

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대구 복심법원에 상고하였으나 1921

년 12월 13일 역시 징역 5년 형을 선고하여 옥고를 치렀다.(동아일보 1921

년 6월 4일자) 이후 광주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1954년에 사망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을 기려 1977년 건국포장을, 1990년에는 건국훈

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1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제1묘역 303호에 안장하여 추모하고 있다.


출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 독립운동사자료집,

대구복심법원판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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