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송월당松月堂 정윤길鄭潤吉<효자,열부>
정조 때 76세의 나이로 ‘어고방’에 이름을 올린 “송월당松月堂 정윤길鄭潤吉”


  정윤길(1723~1804)은 조선 후기의 문신 효자. 자는 군경君慶. 호는 송월

당松月堂. 본관은 하동. 광주 북구 오치동 출신인데 양산동으로 옮겨 살

았다.

1773년(영조 49)에 진사 시험에 합격했는데 그의 나이 51세가 되던 해였

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흐른 뒤인 1797년(정조 21) 정조는 책 몇 권을 광

주에 보내 전라도 선비들에게 교정을 보도록 하명했다. 정윤길도 이 교정

에 참여했다. 이듬해 정조는 광주목사 서형수에게 지시해 광주에서 과거

시험을 개최하도록 했다. 응시자는 1년 전 자신의 지시로 교열에 참여했다

가 실력을 인정받은 선비들로 제한했다. 정윤길도 1년 전 교정에서 실력을

인정받았던 터라 이 시험의 응시자격을 얻었다.

시험은 당시 광주객사인 광산관 앞뜰에서 열렸다. 현재의 충장로 1가 일

대다. 시험은 총 3일 동안 치렀고 과목은 다섯 종류였는데 첫날은 시詩, 둘

째 날은 부賦·전箋·의義, 셋째 날은 책策이었다. 응시자는 그 가운데서 세

과목을 골라 답안지를 작성하면 됐다. 이 시험에는 모두 53명이 합격했다.

과거시험 합격자 명단을 과방科榜 또는 금방金榜 혹은 이들을 줄여서

그냥 ‘방’이나 ‘방목’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시험의 합격자 명단은 정조 임

금이 직접 검토하고 결재했다고 하여 어고방御考榜 또는 어고방목御考榜

目이라고 했다. 이 방목은 총 53명의 합격자들의 간단한 인적사항, 과목별

석차, 종합 석차를 일일이 열거해 쓴 탓에 길이가 무려 28미터에 이른다.

방목에는 정윤길의 이름도 나온다. 그는 ‘부’과목에서 삼중三中, ‘책초策草

-책 과목의 시험답안을 초서로 쓴 것’에서 삼하三下의 점수를 받았다. 그

리고 합격의 특전으로 그는 ‘급분給分’을 받았다. 급분이란 시험에서 얻는

점수로 이것이 누적되어 일정한 점수가 되면 통상적으로 과거시험의 1차

관문인 초시를 건너뛰어 바로 2차 시험인 회시에 응시할 자격을 가졌다(2

차 시험을 통과하더라도 최종 3차 시험인 전시를 통과해야만 대과에 최종

급제했다).

  그러나 이 시험에 합격할 당시 정윤길의 나이는 이미 76세였다(당시 합

격자 중 최고령자는 78세였다), 이런 그의 나이를 생각하면 그는 더 이상

과거시험에 나서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러한 사실은 당시 이 시험과 관련

정려된 기록과 정윤길의 유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그가 남긴 당시의

과거시험지 등 유품은 1798년 광주에서 실시된 특별시험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한편 1879년에 간행된 『광주읍지』

재학才學 편에는 정윤길에 대해 문장이 아름답고 효행이 남달랐으며 임

금의 은혜를 입어 증직으로 지평이란 벼슬을 받았다는 사실을 소개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양산동 양지 마을에는 정윤길의 정려가 전한다. 이 정려는

1859년(철종 10) 사림들의 상소로 조정에서 사헌부 지평을 증직하고 정려

하도록 명하여 세워진 것이라고 한다.

유집으로 농서 1권, 송월당집 2권이 있다.


출전 북구 역사인물, 광주읍지, 북구 문화유적, 효행열지, 하동정씨 절효문 요람.


-자미(紫薇)골 역사인물-읽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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