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약포藥圃 정오도鄭吾道 <효자,열부>
향리의 문화발전에 힘쓴 효자 약포 선생 “약포藥圃 정오도鄭吾道”


 정오도(1647—1736)는 조선 중기의 유학자. 자는 일관一貫. 호는 약포藥

圃. 본관은 하동. 광주 오치동梧峙洞 집에서 아버지 증승정원좌승지贈承

政院左承旨 석현碩賢과 어머니 문화 유씨의 아들로 태어났다.

일찍부터 우암尤菴 송시열宋時烈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성리학性理學

에 밝았다. 1689년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송시열, 김수항金壽恒 등이 유

배되고 성혼成揮, 이이李珥 등이 추출됨을 보고 이에 대한 부당함을 상소

하였고, 인현왕후의 복위를 상소하기도 하였다. 그의 뜻을 이루지 못하자,

향리에 돌아와 동계洞契를 창설하고 향약鄕約을 제정하는 등 향리의 문

화발전에 힘썼다.

평생 벼슬을 하지 않고 학문과 시문으로 일상을 보냈으며,

특히 어버이 병환에 이상한 풀이 정원에 나서 의원에게 물어

궁귀탕芎歸湯에 속한 약초임을 알고 달여서 복용하니

치료가 되어 향리에서는 효성이 지극하여 하늘이 약초藥草를 나게 하였다고

칭송하고, 스승인 우암께서 동리약포東里藥圃 4자를 써서 편액을 하니 약

포 선생이라 칭하며 그의 호號가 되었다 한다.

  그의 셋째 아들 대중岱重으로 인하여 1710년(숙종 36) 첨지중추부사에

제수되고, 1712년(숙종 38) 오치 서편 동정산洞庭山(현. 광주 매곡동) 계곡

에 파취정把翠亭을 짓고 그곳에서 시부詩賦를 노래하면서 여생을 보냈다.

사후에 호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오위도총부부총관에 추증追贈되었다.

1859년(철종 10) 광주의 지산사芝山祠에 제향되고, 1905년(고종 42)에

화담사花潭祠에 제향되었다.

  저서로 약포집藥圃集은 1804년(純祖4) 그의 현손인 정동진鄭東璡이

수집 간행하였고, 중간본重刊本은 1905년 6대손인 정재순鄭在舜이 증보

간행하였다.


 출전 북구 역사인물, 광주읍지, 북구 문화유적, 약포집, 화담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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