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죽사竹史 김광언金光彦<효자,열부>
부친의 병환에 허벅지를 베어 간병한 “죽사竹史 김광언金光彦”


   김광언(1755~1810)은 조선 후기의 효자. 자는 명여明汝. 호는 죽사竹史.

본관은 광산. 광주 북구 본촌동 출신이다.

타고난 천성이 어질고 효성이 지극하여 부친의 병환에 허벅지를 베어 간

호하였으며, 모친의 상사에는 예로서 정성을 다하였다.

유학 임관수林寬壽 등이 광주光州의 고故 학생 김광언金光彥의 효행

을 포양하기를 청한 상소가 예조에 접수되어 그 실적을 조사하여 보고하

도록 하겠다는 것을 1866년(고종 3) 10월 5일 주상에게 보고(승정원일기)

하고 또 전라도 유학 임사욱任思郁 등은 광주光州의 고故 학생 김광언金光彥의

효행을 정려하여 포상하기를 청하였다고 1867년(고종 4) 9월

5일 예조에서 보고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이에 조봉대부朝奉大

夫 동몽교관童蒙敎官으로 증직 명정命旌되었다.

 1868년 목조로 정려각을 광주광역시 북구 본촌동 317번지에 신축하였

다. 세월이 오래되어 목조 정려각은 퇴락하여 그 자리에 1995년 8월에 석

조로 교체하였다. 정려비각 내부에는 김광언의 정려비와 전면 위에 증손

김영기의 중수기가 새겨져 있으며 옆에는 와비로 중수비가 새겨져 있다.

정려각의 규모는 높이 202cm, 폭 59.5cm, 두께 27.5cm이다.

                            旌閭重修記

惟我族曾祖府君至誠之孝鄕道儒林之薦狀及本道伯之啓辭及諸公之記

實甚詳而府君之孝行著于世爲其後裔者何不黽勉以效祖先之行乎立旌己

經年歲風雨磨洗丹靑己變棟字己朽則及時修繕不可不謹也令春之役周旋

財力者判洙三乭喆洙也終始勤勞者永浩洪仁滿洙字植學稙也事至竣功

永基會宗族而告之曰今日吾輩粗知愛親敬兄而不與禽獸同歸者府君所使

也今若外修而不修內行是治其未而不治其本其可乎吾家當此國家創建之

時勉於問學益修德行母泰祖先是爲承家之道也

丙戌春三月上弦 族曾孫永基謹識


출전 광주읍지, 승정원일기, 광주의 문화유적, 북구 문화유적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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