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해광海狂 송제민宋齊民<충신,의병>
영광 앞바다에 제방을 쌓아 해일의 피해를 막은 실시구시의 실학자, 의병장 “해광海狂 송제민宋齊民”

 

송제민(1549. 명종 4~1601. 선조 34)은 조선 중기의 학자·의병장. 초명은

제민濟民. 자는 사역士役 또는 이인以仁. 호는 해광海狂. 본관은 홍주洪

州. 정자 정황庭篁의 아들로 담양 금성면 대곡리에서 출생하였으나 어려

서부터 광주 북구 운암동(황계)에서 살았다. 이름은 뒷날 백성을 구제하

지 못함을 탓하여 제濟를 제齊로 바꾸었다.

선생은 재주가 남보다 많이 뛰어나 책을 몇 번만 읽어도 외워 버렸고, 문

장을 쓰는데도 종이와 붓을 잡으면 그대로 써 내려가는 머리를 가졌다. 성

장하자 옛 성현의 학문에 뜻을 두어 성리학에 마음을 쏟아 미묘한 그것까

지도 탐구하느라 밤낮을 게을리하지 않고 침식을 잊은 적이 한두 번이 아

니었다. 일찍이 말하기를 “선비가 이 세상에 태어나 글을 읽고 연구를 하

는 것은 장차 써먹기 위함이다. 선비가 만약 때를 만나서 조정에 나아가

임금을 섬기게 되면 요순堯舜과 같은 임금과 백성을 만드는 것이 나의 책

임이지만 만약 뜻을 얻지 못한다면 자신의 삶을 만족할 뿐이지 어찌 영리

에 급급하겠는가, 오늘날 세상에서 과거로 출세하려는 것은 옥을 싸서 벼

슬 팔기를 구하는 것과 같다. 임금을 섬기고자 하여 먼저 부정한 방법으

로 벼슬을 구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하였다.

1578년 선생의 나이 30세에 토정土亭 이지함李之菡의 문하에서 공부

하였는데 글재주가 뛰어났다. 호방한 성격에 구속을 싫어하여 벼슬을 하

지 않았다.

그는 양명학에 심취하였고, 빈민구휼과 애민사상 고취에 선구적 역할을

하였는데, 그중의 하나가 영광 앞바다에 제방을 쌓아 해일의 피해를 막는

공사였다. 당시 해일로 인해 영광군 일대의 농토가 큰 피해를 당하였는데

그는 함평, 무안현 일대의 소나무를 베어 제방 공사를 총감독한 것이다.

「미암일기」 등 당시의 기록은 해광의 행동이 그르다는 평을 하고 있으

나 조선 사대부 가문의 덕망있는 유학자로서 경전 연구에만 몰두하지 않

고 실사구시實事求是를 행하고자 했던 그의 경세 사상은 해양 사업을 크

게 일구었던 무역 선단의 대 선주였기 때문이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생은 먼저 금성출신 양산용梁山龍 양산

숙梁山璹 등과 의병을 모아 건재健齋 김천일金千鎰 의병과 합류하였다.

모두가 김공을 대장으로 추대하고 선생은 스스로 종사관이 되어 군사를

거느리고 북상하다가 수원에 이르러 조헌趙憲과 고경명을 만나 금산 전

투에서 연패하자 고향에 돌아왔다.

그는 스승인 곤재 정개청의 권유로 상선 29척을 이순신 장군에게 주어

이를 병선으로 개조하여 강화도 연해와 남해의 해전을 이끌 수 있게 지원

하였다.

 1593년 친상親喪을 당하여 집에 있던 충용장 김덕령金德齡을 권하여

의병을 모집하고, 친히 제주에 건너가 준마를 구하여 주었다. 다시 김덕령

의 의병군에 가담하여 경상도 지역을 방어하다 이인좌의 난에 연루되었

다 하여 김덕령이 옥사하자 선생은 종일토록 통곡하고 『와신기사臥薪記

事』를 저술하였다.

 1597년 정유재란에 왜적을 막을 계책을 건의키 위하여 남원에 주둔하

고 있는 명장明將 양원楊元을 찾아가 이곳은 지형이 불리하니 속히 다른

곳으로 진을 옮기도록 권하였으나 양원이 선생의 말을 믿지 않고 있다가

적에게 패하고 말았다. 이때 명장이 화친을 도모함을 보고, 척왜만언소斥

倭萬言疏를 지어 화의和議의 부당함과 왜적을 물리칠 여러 방안을 피력

하였으나 이것이 관찰사의 미움을 사게 되어 뜻을 이루지 못하자, 분을 이

기지 못하고 이름을 제민齊民이라 고쳤다. 이는 ‘경국제민經國濟民의 뜻

을 이루지 못하였으니 서민과 다를 것이 없다.’라는 뜻으로 나라의 원수를

갚지 못해 죄인으로 간주하였다. 이후 무등산에 은거하면서 세상을 잊고

살았다.

  1789년(정조 13)에 지평에 추증되었고, 광주의 북구 운암동에 운암서원

雲巖書院에 제향 되었으나, 서원 훼철령에 의해 헐리고, 지금은 화암동에

운암서원을 다시 지었다.

저서로는 『해광집海狂集』이 있다.


출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북구 역사인물, 광주읍지, 호남절의록, 운암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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