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회재晦齋 노희서盧希瑞<충신,의병>
임진왜란때 금산전투에서 장렬하게 순절한 의병 회재晦齋 노희서盧希瑞


 노희서(1558~1592)는 임진왜란 때 의병 무관. 자는 명옥鳴玉. 호는 회

재晦齋. 초명은 성필成弼. 본관은 광주. 절효공 노준공의 후손으로 참봉

흔동欣東의 아들로 광주 일곡동 출신이다.

 일찍이 학문을 성취하고 궁마에 뛰어나 무과에 급제하고 병절교위을 역

임한 후 낙향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고경명 의병군의 일원으로 금산

전투에 참여 칼을 휘두르며 돌격전을 수행하여 수 십 명의 적을 참살하

니 적은 조금 후퇴 하였다. 얼마 있다가 또다시 많은 적이 벌때처럼 다가와

서 그를 여러 겹으로 포위하니 총칼로 싸우는 그 속에 단도 만을 지닌 그

는 마침내 군중에서 고경명 부자와 함께 장렬히 순절하였다. 때는 1592년

7월 10일 그의 나이 35세였다. 시신을 수습할 수 없어 초혼장

으로 안장했다. 그의 충견이 금산까지 따라가 주인의 담배쌈

지를 입에 물고 돌아왔다는 일화가 있다.

 난이 끝나고 1605년에 선무원종공신에 책록되고 병조참판에 추증되었다.

뒤에 금산 칠백의총 종용사와 일곡동 절효사에 배향되었다.

 회재공파 후손들은 1972년 일곡동에 감모재感慕齋를 건립하였다. 재실

의 규모는 3층의 철근 콘크리트 건물로 맨 위층을 재실로 이용하고 있다.

재실 경내에는 증가선대부병조참판회재광산노공순충비가 세워져 있다.

贈嘉善大夫兵曹參判嗨齊光山盧公殉忠碑

盧氏東方巨閥也其上祖諱蔓位高麗政丞封光山君一世而尙書二世而平

章七世連登槐撰三毘李同占桂榜而文科政堂文學諱門錫文科進賢館大

提學間鳥堂詢諱有幹密眞司事諱士淸節孝公諱後恭,文科司成式齊諱光

利黼黻王庭柯則士林郡守諱珪縣今諱仲崙判尹諱漢經文科都事諱秀菊

克承祖武流芳百祀參判晦齊諱希瑞 宣廟龍蛇之亂與高忠烈公同殉錦山

文烈公健齊金先生啓聞于上贈兵曹參判墓在光州日谷文燈子坐諱大龍墓

俱在草場洞子坐原各配位墓或合窆或雙瑩連世墳墓龜頭烏石之表比比

有之焉今辛亥小春門議齊發將謨壁碑於參判公感慕齋附近地豈可無膽

望追遠之思乎噫樵收之所當戌犯而遠近人士之行過是道者一見知其爲

吾盧氏之先塋也栽后孫佑變奉其門中長老之命徵余文焉

歲重光大淵獻黃鍾月上澣 參判公後孫 文永謹書

辛亥(1971). 11.


출전 호남절의록, 광주읍지, 절효사지, 북구 문화유적조사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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