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석계石溪 정대현鄭大鉉<처사,선비>
단발령에 항거한 석계정 처사 “석계石溪 정대현鄭大鉉”


  정대현(1873~1946)은 대한제국기의 유학자. 자는 익삼益三. 호는 석계

石溪. 본관은 하동. 도정都正 정덕필鄭德弼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정지초

鄭志楚 어머니는 강화최씨江華崔氏의 아들로 광주 북구 오치동 상오치

마을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천성이 온후하고 행동거지가 단정하였으며, 효성과 우애가 지극하

였다. 어려서부터 영민하여 날마다 책을 읽었으며 과거 시험공부를 했으

나 부질없음을 깨닫고 구한말 의병장 송사 기우만奇宇萬에게 수학 후 학

문을 강구하고 석계정石溪亭을 짓고 유유자적하며 처사적 삶을 살았던

그는 말보다 행동이 앞서 존경받고 공사 시비를 구별하는 것이 칼로 자른

듯 분명했다. 그는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친구들을 초청해 글과 고금의 역

사를 논하였다. 일제가 강점기에 시행한 단발령과 변복에 따르지 않고 죽

을 때까지 상투를 틀고 한복을 입었다.

그는 시문에 능해 차용진정사속수계운次湧珍精舍續修稧韻, 근차봉산

정사원운謹次鳳山精舍原韻, 근차용진정사원운謹次湧珍精舍原韻, 근차

고현와엄이재운謹次高弦窩掩耳齋韻, 표충사미국계운褒忠祠薇菊契韻,

근차오후석장용진정사운謹次吳後石丈湧珍精舍原韻, 초은정시회樵隱亭

詩會, 근차쌍석정원운謹次雙石亭原韻, 무등산登瑞石, 장연사봉안문충선

공영정長淵祠奉安文忠宣公影幀, 차양수묵정양재운次梁守默靜養齋韻,

차요요재운次蓼蓼齋韻, 차박노선오헌운次朴魯宣梧軒韻, 차강윤원농은

정운次姜允源農隱亭韻, 차송암운次松菴韻, 송광사松廣寺, 차이상호초

은정운次李相皓樵隱亭韻, 경현사운景賢祠韻, 삼익계三益契 등을 참여

하고 많은 시문을 남겼다.

말년에 최기모崔基模(1869~1925), 윤석홍尹錫泓, 박노술朴魯述

(185I~1917), 박노춘朴魯春, 김진현金珍鉉(1878~1966), 김도병金道炳,

유창수柳昌秀, 여방섭呂邦燮, 제갈하백諸葛夏帛, 최영조崔永祚, 최영와

崔永窩, 오계수吳繼洙(1843~1939), 오준선吳駿善, 박노면朴魯冕, 안병택

安秉宅, 유창수柳昌秀 등이 그를 흠모하며 시를 남겼다.

저서로 『석계시고石溪詩稿』가 있다. 서문은 외당畏堂

고한주高漢柱 (1871~1959)가발문은 정해영鄭海英이 썼다.

1975년 간행되었다. 이 시고의 번역본을 증손 병

열炳悅이 2010년 6월 도서출판 에코피아에서 발행하였다.



출전 북구 역사인물, 석계시고, 광주시사, 남도 정자기행.


-자미(紫薇)골 역사인물-읽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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