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오산梧山 이용헌李龍憲<처사,선비>
빈민을 구제한 토주 “오산梧山 이용헌李龍憲”


  이용헌(1851~1895)은 구한말 유학자. 자는 운오雲五. 호는 오산梧山.

본관은 함평. 취만翠晩 민형敏炯의 아들로 북구 오치동 하오치에서 태어

났다.

9세에 부친 취만에게 취학就學한 후 성질이 순수하고 경학에 깊은 마

음을 두고, 약관弱冠에 노사 기정진奇正鎭에게 10년 정도를 배워 문장과

학행에 조예가 더욱 깊었다. 그의 손자로 조선 말기의 학자 의병장이었던

기우만奇宇萬과도 교유했다.

  저서로 시문과 『십회잠十懷箴』, 『척사부정설斥邪扶正說』 등을 썼

던 선비로 후학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인물이다. 그리고 조강하趙

康夏, 조종필趙鍾弼,이만교李萬敎와 교유하여 그들로부터 남주고사南

州高士의 대우를 받았던 선비일 뿐아니라 전래傳來의 넉넉한 가산家産을

그대로 보전하여 많은 빈민을 구제한 당시의 토주土主이기도 하다.

오치동 956-8(서하로 243)에 있는 오산정梧山亭은 그가 오치동의 안산

정상에 작은 정자를 지었으나 완성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자 의병장

최익현의 뜻을 받들어 구국운동을 펼쳤던 아들인 송천松泉 이계익李啓

翼(1878~1946)이 1911년경 부친을 위해 그의 호를 따서 지었다.

원래 이정자는 1911년 오치 안산案山에 있었으나 1971년 호남고속도로

공사로 인하여 부득이 오치동 518번지 본가로 이건하였다가, 1987년 그

위치를 바꾸어 현재의 장소로 옮겨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정자에 석촌石邨 윤용구尹用求는 서액書額을, 동강東江 김영한金寧

漢은 정기亭記를, 춘담春潭 기동준奇東準은 상량문上樑文을 각각 썼다.

그러나 의당 정내에 결려 있어야 할 주인 이계익의 원운原韻, 원기原記를

비롯한 대서 현판 및 찬미 시문詩文 등 30여개의 판각版刻이 창고에 방치

되어 있어 정자로서의 품위를 잃고 있다.

  그는 1895년 3월 11일에 졸하였다. 그 후 1907년 효우孝友와 덕행德行

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 좌승지左承旨에 추증追贈되었다.

오산정 앞에 있었던 조선유민오산이공지비朝鮮遺民梧山李公之碑는 오

산梧山 이용헌李龍 憲의 묘비로 현와 고광선高光善이 짓고, 종 2품 가선

대부 전前 참판 이우명李愚明이 썼다.

『오산유고梧山遺稿』를 남겼으며 이 문집은 오산팔경 등 시詩, 서書,

잠箴 등 118편의 기문들이 실려 있다.


출전 북구 역사인물, 광주읍지, 오산유고, 남도 정자기행, 북구 문화유적.


-자미(紫薇)골 역사인물-읽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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