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풍암楓巖 김덕보金德普<처사,선비>
풍암정의 의로운 선비 “풍암楓巖 김덕보金德普”


  김덕보(1571~1627)는 조선 중기의 유학자. 자는 자룡子龍. 호는 풍암楓

巖. 본관은 광산光山. 아버지 김붕변金鵬變과 어머니 남평박씨南平朴氏

의 셋째 아들로 광주光州 북구 충효동 석저촌石底村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종조인 사촌沙村 김윤제金允悌로부터 공부를 하였다.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형 김덕홍金德弘, 김덕령金德

齡과 함께 의병을 규합하여 3형제가 함께 고경명高敬命 의병에 참여하여

김덕령은 전주에서 돌아오고, 큰형 김덕홍은 금산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집에서 모친상을 당한 김덕령은 담양부사 이경린李景麟, 장성현감 이귀

李貴 등의 권고로 의병장이 되어 경상도 고성에서 적을 방어하고 있었는

데 1596년 7월 홍산鴻山에서 이몽학李夢鶴이 반란을 일으켜 도원수 권

율의 명을 받아 진주에서 운봉까지 진군했는데 이때 이몽학과 내통했다

는 충청도체찰사 종사관 신경행辛景行과 모속관募粟官 한현韓絢의 무고

로 체포되어 옥사하자 향리에서 세상의 일에는 뜻을 두지 않고 풍암정사

風巖精舍를 중수하고 학문 연구에만 힘을 기울였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인조가 즉위하자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창릉참봉

을 제수받았으나 얼마 후 사직 하고 돌아왔고, 다시 오수찰방獒樹察訪과

장원서별제掌苑暑別提 등을 제수 받았으나 모두 취임하지 않았다.

  1627년 정묘호란丁卯胡亂이 일어나자 은봉隱峯 안방준(安邦俊

1573~1654)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으나 노병으로 인해 전장에는 나가지

못하고 죽었다. 1785년 전라도 유생 기석주奇錫周 등의 상소에 의해 큰형

김덕홍과 함께 포상이 추증되어 의열사에 배향되고 집의執儀 벼슬을 받

았다.

  풍암정은 광주광역시 문화재 자료 제15호로 지정되었으며 규모는 정면

2칸, 측면 2칸, 골기와 팔작지붕으로 이루어졌다.

정내에는 고경명, 임억령林億齡, 안방준安邦俊 등의 시문이 있는 것으

로 보아, 정자는 임진왜란 이전에 지어져 있었고 1칸의 방이 있어 이곳에

서의 칩거는 난 후인 것으로 보인다.


출전 광주읍지, 북구 역사인물, 풍암기, 누정제영, 남도 정자기행,

북구 문화유적조사보고서.


-자미(紫薇)골 역사인물-읽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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