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금강錦岡 정귀세鄭貴世<문과,무과>
고경명 의병 막하에서 전사 ‘칠백의총’에 묻힌 열사 “금강錦岡 정귀세鄭貴世”



   정귀세(?~1592)는 조선 중기의 무관. 자는 여화汝華. 호는 금강錦岡. 본

관은 진주. 필례必禮의 아들로 광주 북구 출신이다.

그는 효성이 지극하고 용감하여 1590년(선조 23)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

원봉사訓鍊院奉事를 역임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라도 담양에서 거의한 고경명

高敬命 의병 막하에 광주의 전 봉사 정귀세와 함평의 전 주부 박응주主

簿朴應柱, 영광의 선비 이인우李仁佑, 옥주의 선비 전용관田用灌, 정읍

의 선비 김봉학金奉鶴, 조식趙軾이 가동家僮을 거느리거나 혹은 향병鄕

兵을 거느리고 휘하로 들어갔다.

 그해 6월 고경명이 충청도 의병장 조헌趙憲과 승장 영규靈奎 등과 합세

하여 8월 금산성에 주둔한 왜군을 공격할 때 참전하였다. 적군에게 포위

된 가운데 온 힘을 다해 싸웠으나 병력 수의 열세로 의병 700여 명과 함

께 전사하였다. 이때 전사한 700의사의 무덤을 칠백의총七百義塚이라 하

여 금산에 있다.

 1605년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녹훈되고, 금산 종용사從容祠에

배향되었다.

  권율장군이 공신에 책록된 5주갑(300년)이 되는 1902년에 고을의 인사

들이 창의비를 세울 것을 모의하고 심석心石 송병순宋秉珣, 선생에게 비

문을 받아 권율의 11대손인 권교현權敎鉉의 글씨인 이 비는 1902년에 세

운 기념비로 광주향교 옆 비석공원(구동 21-1)에 있다. 도원충장수권공창

의비都元帥忠壯權公倡義碑에는 임진왜란에 권율이 광주목사에 제수되

어 약법約法 10조를 발포하고 적의 침입에 대비하니 적이 침입하지 못하

였다. 이어 이치전투梨峙戰鬪에서 적을 크게 물리친 공으로 전라도관찰사

로 승진하여 행주대첩을 이루어 사직을 보전했다고 하였다.

당시 이 지역 출신의 의병장들(名單 26人)이 기록되어 있어, 이들이 권

율 장군을 도와 여러 차례 대첩을 이루었음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출전 북구 역사인물, 광주읍지, 북구 문화유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호남절의록.


-자미(紫薇)골 역사인물-읽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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