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중경重卿 이방주李邦柱<문과,무과>
임진왜란때 고부군수로 공을 세운 “중경重卿 이방주李邦柱”



  이방주(1542~1597)의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임중任重. 호는 중경重

卿. 본관은 함평. 아버지 준俊과 어머니 송씨의 아들로 광주 북구 용봉동

중봉 마을(봉곡리, 저불 마을) 출신이다.

어려서부터 천성이 지효하여 부모를 정성껏 섬기었다. 부친의 상을 당하

자 소찬으로 겨우 연명하며 예를 다하여 치상하니 타인의 귀감이 되었다.

1558년(명종 13) 식년시式年試 진사進士 2등 14위로 합격하고, 1570년

(선조 3) 식년시 갑과 3위로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 교리校理, 1576년 대

동찰방大同察訪, 1583년 무장현감에 재직할 때에 거친 벼 1만여섬의 부

실이 호조낭청戶曹郎廳에게 적발되어 그를 잡아다가 추문을 당하기도 하

였다. 이후 전라도사를 역임하면서 서인西人의 영수인 송강 정철의 무함

誣陷을 변호하였다.

1594년 임진왜란 중에 고부군수로 임명된 것으로 보아 의병청의 병사와

병기, 군량모집에 기여한 공로가 큰 것으로 여겨진다.

1597년 정유재란 때 그는 중풍을 앓았는데 아들인 주부 수경壽慶이 대

나무 가마를 태워 영암의 한 산골에 피하여 숨었다. 왜적이 갑자기 닥치

니, 그가 말하기를 “나는 이미 중병으로 살기 어려우니 너는 마땅히 피하

라. 네가 살아 있어야 내 시신을 거둘 것이다.” 하였다. 수경이 가마를 붙잡

고 나가지 아니하여 부자가 함께 순절하였다. 금상 때 정문을 내렸다.

 저불(적불, 笛吹, 赤茀)이란 마을 지명의 유래가 그의 과거급제와 관련

이 있다 한다. 1570년 그가 과거 급제해 종형인 백춘百春 종택 사당에 모

셔있는 선조先祖에게 급제를 알리기 위해 피리를 불고 취적吹笛 행차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출전 북구 역사인물, 문과방목, 선조실록, 광주읍지, 함평이씨 종친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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