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오당梧堂 이긍李兢<문과,무과>
세종때 ‘기성군’으로 봉해진 ‘기성군신도비’의 주인 “오당梧堂 이긍李兢”



  이긍(1389, 공양왕 1~1433, 세종 15). 조선전기의 문신. 호는 오당梧堂.

본관은 함평. 이춘수李春秀의 아들로 함평이씨 기성군파 파조이다.

광주 각화동에 예장토록 하여 광주와 인연을 맺었다. 그의 증손 계인繼

仁이 기묘사화를 피하여 경기도 용인에서 긍의 묘소와 가까운 북구 오치

동으로 옮겨와 살았다. 어려서부터 성품이 충성스럽고 온화하여 너그럽고

어진 도량과 재능이 있었다.

1405년(태종 5)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 3위로 급제하고, 여러 관직을

역임하고, 1427년(세종 9) 판사재감사判司宰監事가 되어 중시重試 을과乙

科 1위로 급제하였다.

 1430년(세종 12) 예조참의禮曹參議, 1431년(세종 13) 참찬관參贊官, 동

부대언同副代言, 우부대언右副代言, 첨총제僉摠制, 1432년(세종 14) 이조

우참의吏曹右參議, 이조좌참의吏曹左參議, 공조우참판工曹右參判, 한어

漢語(중국어)를 잘하여 승문원제조承文院提調가 되어 한어를 가르쳤다.

1433년(세종 15) 공조참판工曹參判이 되어 사은부사謝恩副使로 북경

에 가던 도중 병을 얻어 첨수참甛水站에 이르러 사망하였다.

1433년(세종 15) 그의 졸기에 요동 도사遼東都司가 치제致祭를 하고,

임금이 부음을 듣고 심히 슬퍼하여 기성군箕城君에 봉하였으며 관곽棺

槨과 쌀과 콩을 합해 70석을 하사하고 승지承旨 임은林銀에게 명하여

예장으로 치제케 하였다. 그 후 함평 사산사射山祠에 배향되었으며,

또한 광주광역시 북구 각화동 372번지에는 함평이씨 기성

군파 후손들이 1938년에 주격재奏格齋를 건립하고 매년 10월 15일에

제향하고 있다. 그리고 1998년에 기성군신도비, 1999년에 기성군임

종유시비, 2006년에 기성군유사비가 세워졌다.



출전 북구 역사인물, 조선왕조실록, 광주읍지, 북구 문화유적, 함평이씨 광주종친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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