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군자정軍資正 송만宋墁<문과,무과>
여러 관직을 두루 섭렵한 조선 중기 문신 “군자정軍資正 송만宋墁”



  송만(1663~1721)은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화이華而. 본관은 홍주. 흡

熻의 둘째 아들로 광주 북구 용두동 거상 마을 출신이다.

1684년(숙종 10) 식년시 병과 26위로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

쳐, 1687년(숙종 13) 금보집사학록金寶執事學錄으로 책보개수에冊寶修

改4)에 참여한 12인에 각각 상현궁上弦弓 일장一張을 하사下賜하였다.

1697년(숙종 23) 예조정랑禮曹正郎, 1701년(숙종 27) 강진현감康津縣

監, 1704년(숙종 30) 함경도 경성판관鏡城判官, 1713년(숙종 39) 사헌부

장령司憲府掌令, 1714년(숙종 40) 병조정랑兵曹正郎, 1918년(숙종 44) 사

헌부장령司憲府掌令, 1719년(숙종 45) 군자정軍資正(정3품 당하관) 등을

역임한 것으로 확인이 된다.

그는 숙종에 이어 임금이 된 경종景宗이 세자 시절에 돈독한 관계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숙종실록』 숙종 44년 12월 26일 사헌부 장령으로 발

탁되었는데 사신史臣이 논하기를 “송만은 늙어서 이미 정신이 매우 혼미

하고, 지위와 명망 또한 가벼운데, 외람되게 사헌부에 선발되었으므로, 사

람들이 모두 놀랍게 여겼다.”하였고, 1719년(숙종 45) 2월 5일 사간원司諫

院에서 전에 의견을 아뢰었던 것을 거듭 아뢰고 또 말하기를 “사헌부의 직

무職務는 지위가 깨끗하고 책임이 무거운데 장령 송만은 모두 한미寒微

한 신분에서 기용되어 전혀 명칭名稱이 없으면서도 외람되게 사헌부에 선

발되었으니 물정物情이 놀라고 있습니다. 청컨대, 개정改正 하소서” 하였

으나, 세자가 모두 따르지 아니하였다.

 다시 2월 7일에 사간원司諫院에서 전에 아뢰었던 것을

거듭 아뢰었는데, 세자가 다만 송만의 일만 따랐다.

위의 기록에서 그 신임을 엿볼 수 있다.


출전 문과방목, 광주읍지, 북구 역사인물, 조선왕조실록, 북구 문화유적.


-자미(紫薇)골 역사인물-읽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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