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광주군光州君 노만盧蔓<문과,무과>
광산 노씨 광주파의 시조 “광주군光州君 노만盧蔓”

 

  노만(996~1064)은 고려 시대의 문신. 광주군에 봉해지고. 본관은 광주.

광산백光山伯 노해盧垓의 후손으로 광주 북구 일곡동 출신이다.

고려에서 문과 급제하고 여러 관직을 역임하고 문하시랑평장사 벼슬을

역임하면서 바른 정사를 펴고 나라와 백성을 위해 많은 공을 세웠다. 이

때문에 공신으로 광주군光州君에 봉해졌다. 따라서 그를 광주 또는 광산

노씨 광주파의 시조로 1세 조로 세계하고 있다.

특히 그의 후손들은 고려조에서 조선조에 이르는 동안 현달하여 높은

벼슬과 학문, 효행으로 이름을 떨쳤다. 학문이 높고 효성이 지극하여 효자

로서 이름을 떨친 노준공이 그의 13세손이다. 이들 후손들이 일곡동 일곡

마을에 세거하고 있다.

묘소는 광주시 북구 오치동 삼각산 하 능안동陵案洞 임간용任坎龍 곤

신파坤申破 간좌원艮坐原에 쌍분으로 되어 사패賜牌한 묘지가 세대가

멀고 난리를 경화함에 사방의 산록山麓을 전체보수全體補修하지 못하였

고 비갈碑碣과 석물石物까지도 병난兵亂에 유실遺失되었다.

광주노씨光州盧氏는 고려 말기, 전 노씨를 대표할 만큼 번창하였고 그

이름이 세상에 떨치어 당대의 조정에 공헌貢獻한 바 크다.

조선말에 개수改竪하여 상석床石과 표갈表碣과 석인문관석石人文官

石 망주望柱가 있으며 묘소 아래 영모제永慕齋제가 있는데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이 기문記文을 지었고, 간제艮薺 전우田愚가 액자額字를

썼다.

 1926년 오치동에 광주노씨 삼능단三陵壇을 조성하여 전국 9개 종파의

던바壇碑를 한 곳에 세우고, 겸하여 각 종파의 문헌을 종합하여 노씨대

동종안盧氏大同宗案을 정리해 노씨의 역사를 정립함으로 후일 자손들에

귀감이 되도록 하였다.

신도비神道碑는 1960년에 광주시 북구 오치동 109-2(광주노씨삼능단

입구) 갑모원甲卯原에 세웠는데 현와弦窩 고광선高光善이 비문을 지었고

후석後石 오준선吳駿善이 전자를 쓰고 경제敬齊 기종섭奇琮涉이 원문

原文을 썼다. 그런데 2003년 비를 새로 만들고 비각을 세우면서 노재구盧

在九가 짓고 기호중奇浩仲이 쓰고 광주노씨 광주군파 종회가 다시 건립

했다.


-자미(紫薇)골 역사인물-읽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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