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

태령동

 동명의 유래 

태령동(台嶺洞)은 본래 광주군 우치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단지리와 두촌리, 희룡리, 학촌리의 각 일부와 담양군 우면의 광신기 일부지역을 병합하여 태령리라 하였는데, 1957년 광주시에 편입되어 생긴동이다.
이곳에는 조수고개(朝水-), 일명‘조시갯재’라는 고개가 있는데 이 고개는 태령동과 담양군 봉서면 양지리 경계에 있는 고개다. 태령동은 이 고개로부터 불린 지명으로 台嶺의 台는 그 뜻이 크다이고, 嶺은 고개를 뜻하는 말이므로 ‘큰 고개’라는 의미에서 불린 이름이라 추정된다.



* 입암(立岩)마을


▶ 마을의 유래

이 마을의 모습은 마치 떠있는 배의 형국이라고 하는데, 배가 떠있으면 자연히 위태한 모습이겠지만 삼각산의 줄기(마을의 뒷산)가 이 배(입암마을)를 붙들고 있어서 풍수지리상으로 안전한 지형이라고 한다. 이런 연유로 이 마을을 형성한 사람들은 아마도 어부였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 마을은 약 400여년 전에 김해 김씨가 처음 터를 잡아서 이 마을을 형성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누가 어? 경유로 이 마을에 들어오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 마을이 입암 마을로 불려지게 된 것은 들판 한가운데 한 길 반정도 되는 바위가 서있는데 이 바위를 예사롭지 않게 생각한 옛 조상들에 의해서 입암이라 불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 마을의 연혁

-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우치면, 입암, 신평, 용강, 동작, 서작, 종방 등 각 일부는 용강리가 되어 광주군 우치면에 속하게 됨.

- 1932년 11월 1일 우치면과 본촌면이 병합됨에 따라 지산면, 생룡, 용강, 효령, 수곡, 태령 등이 용전리가 됨.

- 1957년 11월 6일 광산군 지산면 16개리가 광주시로 편입될 때 광주시 생룡, 용전, 용강, 효령, 태령동이 됨.

- 1957년 12월 1일 지산출장소 관할 우치동이 됨. 121개동을 51개동으로 축소운영 됨.

- 1973년 7월 1일 구제실시에 따라 지산출장소 우치동은 서구 관할이 됨.

- 1980년 4월 1일 서구관할의 우치동은 신설된 북구 관할이 됨.

- 1986년 11월 1일 광주시가 광주 직할시로 승격될 때 광주직할시 북구 우치동이 됨.

- 1998년 9월 21일 본촌동, 우치동, 삼소동이 통합하여 건국동 설치하여 현재에 이름.


▶ 마을에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지명

- 도치 배미 : 논의 모양이 마치 도끼처럼 생겨서 부르게 된 논 이름

- 구렁골 배미 : 논이 아주 깊고 발이 빠질 정도로 질척했다는 논.

- 시정 배미 : 논 옆에 시정이 있었다고 한다.

- 주검내 : 공동묘지가 있었다는 지역.

- 한걸음 길 : 사방으로 길이 뚫려있었다는 길. (길옆으로 4~5가구의 집이 있었다고 한다.)

- 한걸음 방앗간 : 한걸음 길옆에 있던 물방앗간

- 선바위 : 바위가 서있는 들

- 정자골 : 정자나무가 있었다는 곳.

- 검바위 : 입암 동쪽에 있던 바위로 검은색의 바위가 있었던 곳. 



* 두촌(斗村)마을


▶ 마을의 유래

두촌마을이라 불리게 된 자세한 연유는 알 수가 없으나 마을 형상이 말의 머리 형상을 하고 있어서 두촌이라 불려졌다 한다. 이 마을에 처음 터를 잡은 성씨는 죽산 박씨로 약 400년 전에 이곳으로 이주해 왔다한다. 마을이 번성하였을 때는 20여가구가 모여 자작일촌 하였으나 현재는 5가구만이 살고 있다.


▶ 마을의 연혁

-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의 폐합에 따라 두촌이 태령리가 되어 광주군 우치면에 속함

- 1932년 11월 1일 우치면과 본촌면이 병합됨에 따라 지산면 태령리가 됨

- 1935년 10월 1일 광주군이 광산군으로 개칭되면서 광산군 지산면이 됨

- 1957년 11월 6일 광주시 태령동이 됨

- 1957년 12월 2일 121개 동을 51개 동으로 축소 운영할 때 지산출장소 우치동 관할이 됨

- 1973년 7월 1일 구제실시에 따라 서구 관할이 됨

- 1980년 4월 1일 서구 관할의 우치동은 신설된 북구 관할이 됨

- 1986년 11월 1일 광주직할시 북구 우치동이 됨

- 1998년 9월 21일 본촌동, 우치동, 삼소동이 통합하여 건국동이 설치됨


▶ 마을에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지명

- 우렁배미 : 논에 우렁이 많아서 우렁배미라 불려졌다 한다.

- 길대배미 : 논이 길어서 길대배미라 불려졌다 한다.

- 요강배미 : 논 모양이 요강처럼 생겼다 하여 요강배미라 불려졌다 한다.



* 단지(丹芝)마을


▶ 마을의 유래

단지마을은 원래 단저라고 불렀으며 금반오호 라고도 했다. 이것은 마을 형세가 마치 술단지 처럼 생겼다하여 이렇게 불려졌다 한다. 마을에 처음 터를 잡은 성씨는 전주 이씨로 약 400년 전에 이곳으로 왔다한다.


▶ 마을의 연혁

-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의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단지리가 태령리가 되어 우치면에 속함

- 1932년 11월 1일 우치면과 본촌면이 병합됨에 따라 지산면 태령리 됨

- 1935년 10월 1일 광주군이 광산군으로 개칭되면서 광산군 지산면이 됨

- 1957년 11월 6일 광주시 태령동이 됨

- 1957년 12월 2일 121개 동을 51개 동으로 축소운영할 때 지산출장소 우치동 관할이 됨

- 1973년 7월 1일 구제실시에 따라 서구 관할이 됨

- 1980년 4월 1일 서구 관할의 우치동은 신설된 북구 관할이 됨

- 1986년 11월 1일 광주직할시 북구 우치동이 됨

- 1998년 9월 21일 본촌동, 우치동, 삼소동이 통합하여 건국동이 설치됨


▶ 마을에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지명

- 장구배미 : 논 모양이 장구처럼 생겼다하여 장구 배미라 불려졌다 한다.

- 새기배미 : 논을 시암으로 사용해서 새기 배미라 불려졌다 한다.

- 옥녀봉 : 마을 뒷산에 있는 봉우리를 옥녀봉이라 불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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