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

풍향동

● 동명의 유래 

북구 풍향동은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고사리 鄕校와 豊嶝里과 古鄕校의 이름을 따서 생긴 이름이다. ‘광주향교지’에 따르면 고려 공양왕 때(1390년) 정당문학박사 포은 정몽주 선생께서 시중이 되어 서울에 5부학당과 각 고을에 향교를 세웠다.
광주향교는 공자의 도의사상과 인본주의의 교육정책에 따라 1392년 무렵 瑞石山의 壯元峯 西麓下(무등산 잣고개 너머)에 건립되었다가 호환(虎患)이 생겨 광주읍성의 동문내로 옮겼다. 이후 성종 19년(1488년)에 현감 권수평이 구동에 이건 하였으나 임란 때 소실된 것을 선조 33년에 중건했다한다. ‘동국여지승람’에도 옛날 성안에 있었는데 현감 권수평이 이곳이 낮고 습하고 좁고 퇴락하여 부로(父老)에게 권하여 옮겼다는 成俔의 記가 소개되어 있다.

그러나『한국지명총람』에는 향교는 현 풍향동의 고사(古沙) 마을에 있었고 이 마을은 일명 ‘고새, 고새기, 고생기, 고향교, 고향교리’라 하여 풍향동에서 으뜸 마을이라 했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古沙里의 鄕校와 豊嶝里를 병합하여 豊鄕里라 하여 서방면에 편입되었다가 1955년 광주시에 편입되고, 1979년 풍향동이 되었다한다.

대개 ‘鄕校’가 있는 마을을 부를 때 ‘향(鄕)’을 ‘생’이라 발음하고 ‘교(校)’를 ‘계’ 또는 ‘기’라 발음하여 ‘생계ㆍ생기’라 부르는 지역이 많다. 이를 감안하면 ‘古鄕校’를 ‘고생기>고새기>고사’라 부르는 현상은 자연스런 현상이니 향교가 어느 위치에 있었는가는 확실하게 밝힐 수 없지만 ‘豊鄕洞’이란 지명의 ‘鄕’은 鄕校에서 유래한 지명임이 확실하다 생각한다.


▶ 마을의 유래 

1914년 풍동리와 고사리(고향교)의 이름을 따서 풍향리로 칭하게 되면서 풍향동의 전래를 찾을 수 있다.

풍향동은 장원봉에서 서북쪽으로 나즈막히 내려오는 능선 남서쪽에 자리잡고 있다. 광주향교 옛터 자리에는 고사동네가 있었고 서편에는 풍동이 있었다. 이 일대는 우산동에 있었던 경양역 운영비를 자급하기 위한 역둔토가 있던 곳이다. 방죽밑들, 중시암걸의 둔토는 언더에서 내려오는 시냇물과 계림동의 경양방죽에서 물을 대어 경작했다.


▶ 마을의 연혁

- 조선후기 이 지역은 광주군 서방면에 속했으며, 당시 이곳에 잔풍마을이 있었음.

- 1914. 4. 1 조선총독부의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두방면 豊洞(풍동)리와 古沙(고사)리 는 瑞坊(서방)면 豊洞(풍동)리가 됨.

- 1935. 10. 1 광산군 서방면 풍향리가 됨

- 1995. 7. 1 光州(광주)시 豊鄕出張所(풍향출장소) 관할 豊鄕洞(풍향동)이 됨 (豊鄕洞호칭 개시) 광주광역시 확장에 따라 광산군 서방면이 광주시로 되면서 주민 편의를 위해 풍향출장소 설치

- 1957. 12. 2본청직할의 孝竹洞(효죽동) 관할 법정동 됨

- 1961. 3. 10 북부출장소 관할이 됨

- 1970. 7. 1 효죽동에서 분리되어 풍향동이 됨

- 1973. 7. 1 區制(구제)실시에 따라 풍향동은 東區(동구) 관할이 됨(1973.3.12. 대통령 제 9630호)

- 1979. 5. 1 풍향1,2동으로 분동됨

- 1980. 4. 1 東區(동구)관할의 풍향동은 신설 된 北區(관할)이 됨

- 1986. 11.1 광주직할시 북구 풍향1, 2동이 되었으며, 광주시가 광주직할시로 승격되어 전라남도에서 떨어져 나옴

- 1997. 3. 1 풍향 1,2동을 통합하여 오늘에 이름


▶ 마을의 옛 지명

- 강당(講堂) [들] : 서남쪽에 있는 들. 강당이 있었음

- 고사(古沙) [고새, 고새기, 고향교, 고향교리] [마을] : 풍향동에 으뜸되는 마을. 광주 향교가 있었음

- 방죽밀[들] : 풍동 남쪽에 있는 들. 계림동의 경양방죽 밑이 됨.

- 줄시암[우물] : 줄시암걸에 있던 우물. 줄(풀)이 많이 났었음.

- 풍동(豊洞)[마을] : 고사 서쪽에 있는 마을.




- 무드리 향토사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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