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

장등동

● 동명의 유래 

장등동(長嶝洞)은 본래 광주군 하대곡면의 지역으로서, 긴 등성이 밑이 되므로 장등 또는 장동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복정리 일부와 오치면의 문산리 일부와 상대곡면의 용호리를 병합하여 장등리가 되었다. ‘장등’은 대개 ‘긴 등성이’가 있다하여 ‘長嶝’이라 표기하는 곳이 대다수이지만, ‘長嶝’ <전남 나주군 노안면 양천리>과 ‘長燈’<전남 여천군 화양면 장수리>으로 표기하는 곳도 있다. 또한 市場이 섰다하여 ‘場登’ <전남 해남군 옥천면 송산리>과 ‘市嶝’ <전남 해남군 현산면 월송리>으로 표기하는 곳도 있다.
이곳의 ‘長嶝’은 ‘長燈’으로 표기하기도 하지만 ‘長嶝’이 바른 표기라면 이곳에 ‘긴 등성이’가 있어야 하지만 이곳에는 그런 지리적 환경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곳에는 ‘城들’이라는 들 이름이 있다. 그러므로 혹 이곳에 긴 城이 있어 이로 인하여 ‘長嶝’이라는 지명이 생기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 장등(장동)마을의 유래

장등마을과 장동마을은 원래 한 마을이였다. 200여 가구가 넘는 큰 마을이다 보니 행정상 편의를 위해서 일제시대 때 분리되었다고 한다. 이 마을의 유래는 풍수지리학설에 의하면 '벽에 긴 등을 달아놓은 형상인 장등개벽'이란 명당이 있다고 하여 풍수지리학자들이 이곳을 찾았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은 이곳에 1986년 한국 전력 변전소가 들어서 '등(燈)자(字)' 땅이름을 실감케 했다. 고려시대 이후로 이곳은 담양으로 속하지 않고 광주로 속했다고 한다.


▶ 마을의 연혁

- 조선후기 : 장등동, 맹동, 어운동 마을이 광주군 하대곡면에 속함.

-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의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하대곡면 어운, 복정리 각 일부는 운정리가 되어 광주군 석곡면에 속함.

- 1935년 10월 1일 광주군 석곡면 장등, 운정리가 됨.

- 1957년 7월 1일 광주 망월출장소 관할 장등, 운정동이 됨.
- 1957년 12월 2일 석곡 출장소 장운동이 됨.

- 1973년 7월 1일 구제실시에 따라 석곡출장소 장운동은 동구관할이 됨.

- 1980년 4월 1일 동구관할의 석곡출장소 장운동은 신설된 북구 관할이 됨.

- 1986년 11월 1일 광주직할시 북구 장운동이 됨.

- 1998년 9월 21일 충효동, 청옥동, 장운동은 신설된 석곡동이 됨.


▶ 마을에 내려오는 지명

골짜기의 이름을 본떠서 장동골, 가장골, 아시아골, 금막골, 바우배기, 산정내, 금치골, 돌고개, 모래골, 범바우, 너문함태, 살망태, 고자배기, 안골, 순산재, 도독골, 왕솔엽등, 탑골(예전에 탑이 있었던 절터) 등이 전해내려 오고 있다.




- 무드리 향토사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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