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

중흥동

● 동명의 유래 

중흥동(中興洞)은 본래 광주군 서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모롱이, 중가리와 계천리, 이동리, 병문리, 대가리, 효죽리의 각 일부와 기례방면의 태봉리, 누암리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중흥리라 해서 서방면에 편입되었다가, 1955년 광주시에 편입되고, 1957년 동제 실시에 따라 효죽동의 관할이 되었다가, 1979년 중흥동이 되었다. 그러므로 중흥동은 예로부터 불려온 지명이 아니라 1979년에 불린 지명이므로 이 지역이 더욱 발전하도록 기원하는 의미에서 ‘中興’이라는 이름을 지어 불렀을 것으로 추정된다.


▶ 마을의 유래

이 지역에는 한 복판에 간뎃골, 동편에 모롱골, 북녘에 진고살마을이 있다. 모롱골 북녘에는 시냑골, 병문리마을이 있었다 1625년 인조 때의 왕자 태를 장사 지냈다는 태봉산(52m) 북녘 기슭에 태봉마을이 있었는데 1967년 태봉산을 헐어 경양방죽 매립에 이용했으므로, 지금의 광주역 서편 도로에 있던 태봉산의 흔적은 차아 볼 수가 없게 되었다.

중흥3동은 조선시대에 조성되었으며, 이 지역에 많이 있던 비석은 서동의 향교로 옮겨갔다. 또한 우리 마을 고장 이름이라 해서 경양9골이라 했는데 큰샘골, 솔댁골, 관댁골, 점모실, 신악골 등이 있었다. 당뫼는 중흥3동 동사무소 쪽이고, 큰잔릉은 동신고 있는 쪽이며 범두고개는 동신고에서 효죽동우체국 사이라고 한다. 

중흥동은 이웃 우산동 383번지에 조선시대부터 있었던 경양역을 기반으로 형성된 큰 마을이었다. 구한말 일제에 의해 역의 기능(驥機)이 상실되면서, 광주 외곽의 근교 농촌이었다가 1969년 광주 철도역이 옮겨오면서 역전 시가지가 조성되었다. 지금의 역전 통인 중흥1동과 역 뒤 중흥2,3동이 철길에 의해 갈라져 있다.


▶ 마을의 연혁

- 조선시대 이웃 우산동 383번지에 있었던 경양역을 기반으로 형성

- 조선후기 광주군 경양면에 속함.

- 1914년 중가리와 신흥리의 이름을 따서 중흥리라고 칭함.

- 1955년 중흥동으로 개칭됨.

- 1957년 122개 동을 51개 운영동으로 축소함에 따라 풍향동, 우산동과 함께 효죽동이 됨.

- 1969년 광주역이 옮겨오면서 역전 시가지가 조성된 지역으로 동구 효죽동에서 분동됨.

- 1979년 5월 1일 중흥동이 중흥1, 2동으로 분동

- 1982년 9월 1일 중흥2동에서 중흥2, 3동으로 분동


▶ 마을에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지명

- 간뎃걸(간뎃골) : 중흥동 복판에 있는 마을.

- 모른걸 : 모롱골, 모롱리(毛弄里) 간뎃걸 동쪽에 있는 마을.

- 병문(屛門)안(병문리) : 시냑굴 북쪽에 있는 마을.

- 사랫몰(사른물) : 가랫몰 북쪽 들에 있던 마을.

- 시냑굴(시낙골) : 모른걸 북쪽에 있는 마을.

- 신중흥(新中興) : 중흥동 옆에 새로 된 마을.

- 진고샅 : 간뎃걸 북쪽에 있는 마을. 긴 고샅 옆이 됨.

- 태봉(太峯, 胎峯) : 태봉 밑에 있는 마을.




- 무드리 향토사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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