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

용강동

● 동명의 유래 

용강동(龍江洞)은『호구총수』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고 있다. 그러나『구한국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의 자료에는 우치면 관할로 龍江里가 있다. 龍江은 굽이쳐 흐르는 강가에 마을이 조성되었기 때문에 ‘龍江’이라 불렀다 한다.
위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龍’은 상상의 동물인데 예로부터 중국에서 임금을 상징하는 동물이었다. 그것은 옛날은 농사를 지음에 있어서 수리 시설이 잘 정비되지 않았기 때문에 치수를 잘하여 농사가 풍년이 들면 임금이 덕이 있고 가뭄이 들거나 치수가 되지 않아 농사가 잘못되어 흉년이 들면 임금이 덕이 없기 때문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므로 물을 잘 다스리는 것을 임금이 해야할 중요한 요소로 생각했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이는 마찬가지이었을 것이다. 우리 옛말에 ‘용(龍)’은 ‘미르’라 하였다. 그런데 이 ‘미르’는 물[水]을 뜻하는 옛말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것은 ‘물’에서 원순모음화 하여 ‘믈>물’이 되었을 것이므로 ‘믈’을 의미하는 ‘미르’는 ‘mVrV-’로 옛말이 개음절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고, ‘믈>물’의 ‘mVr'은 현대어에서는 폐음절이 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옛날에 ‘물(水)’을 뜻하는 ‘미르’가 ‘믈’로 발음되다가 ‘ㅡ’가 ‘ㅜ’로 원순모음화되어 불리는 단어가 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므로 ‘龍’자가 들어가 쓰이고 있는 지명은 물줄기가 대체로 굽이굽이 돌아흐르는 특성으로 인하여 이를 뱀이 앞으로 전진하는 모습과 흡사하기 때문에 이를 ‘龍’으로 인식함과 동시에 ‘물’을 뜻하는 옛말이 ‘ㅁ’과 ‘ㄹ’이라는 자음을 가지는 말이므로 이것이 ‘용’을 뜻하는 ‘미르’로 파생되어 쓰이게 된 결과가 아닐까 생각게 한다. 분명 龍은 물과 관련된 어사라 추정할 수 있다. 龍을 뜻하는 옛말 ‘미르’가 ‘물(水)’과 관련이 깊음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 신기(新其)마을


▶ 마을의 유래

이 마을의 생성 유래는 정확히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마을 사람들이 이 곳에 새로 들어와 터를 잡았다고 해서 신기 또는 새터라 불려졌다 한다. 이 마을에 처음 터를 잡은 성씨는 전씨, 추씨, 강씨로 약 200년 전에 이 곳으로 이주해와 터를 잡았다고 한다.


▶ 마을의 연혁

-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의 행정구역  폐합때 입암, 신평, 용강, 동작, 서작, 종방, 학림리 각 일부가 우치면 용강리로 통합됨

- 1935년 10월 1일 광주군이 광산군으로 개칭되면서 광산군 지산면이 됨

- 1957년 11월 6일 광주시에 편입되어 용강동 관할이 됨

- 1957년 12월 2일 121개 동을 51개 동으로 축소 운영할 때 지산출장소 우치동 관할이 됨

- 1973년 7월 1일 구제 실시에 따라 서구 관할이 됨

- 1980년 4월 1일 서구 관할의 우치동은 북구가 신설됨에 따라 북구 관할이 됨

- 1986년 11월 1일 광주직할시 북구 우치동 관할이 됨

- 1998년 9월 21일 본촌동, 우치동, 삼소동이 통합되어 건국동이 설치됨


▶ 마을에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지명

- 잉어등 : 논 모양새가 잉어처럼 생겨서 잉어등이라 불려졌다 한다.

- 낚시터 : 옛날 이곳이 바다였을 때 배를 타면서 낚시를 했다하여 낚시터라 불려졌다 한다.

- 구덕이 : 낚시터에서 잡았던 고기를 잡아넣어 두었던 곳이라 하여 구덕이라 불려졌다 한다. 기타 보산골 등의 지명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 학림(鶴林)마을


▶ 마을의 유래

마을의 모양이 숲 속에 학이 있는 모양을 하고 있어서 학림이라 불려졌다고 한다. 이 마을에 처음 터를 잡은 성씨는 은진 송씨로 167년 전에 쇠북증이 마을에서 이 곳으로 이주했다고 한다.


▶ 마을의 연혁

-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의 행정구역 폐합때 입암, 신평, 용강, 동작, 서작, 종방, 학림리 각 일부가 우치면 용강리로 통합됨

- 1935년 10월 1일 광주군이 광산군으로 개칭되면서 광산군 지산면이 됨

- 1957년 11월 6일 광주시에 편입되어 용강동 관할이 됨

- 1957년 12월 2일 121개 동을 51개 동으로 축소 운영할 때 지산출장소 우치동 관할이 됨

- 1973년 7월 1일 구제 실시에 따라 서구 관할이 됨

- 1980년 4월 1일 서구 관할의 우치동은 북구가 신설됨에 따라 북구 관할이 됨

- 1986년 11월 1일 광주직할시 북구 우치동 관할이 됨

- 1998년 9월 21일 본촌동, 우치동, 삼소동이 통합되어 건국동이 설치됨


▶ 마을에 옛부터 전해내려오는 지명

- 요강 배미 : 논 모양이 마치 요강처럼 생겼다하여 요강 배미라 불려졌다고 한다.

- 진 배미 : 논 모양이 길어서 진 배미라 불려졌다고 한다.

- 장구 배미 : 논 모양이 마치 장구처럼 생겼다하여 장구 배미라고 불려졌다 하낟.

- 섬 배미 : 논 모양이 마치 성처럼 생겼다 하여 섬 배미라 불려졌다 한다.


* 용강(龍江)마을


▶ 마을의 유래

강에 용이 살았다고 하여 용강 마을이라 불려졌다 하며 근처 용강동 일대 중에서 처음 용강이란 말을 사용하여 원용강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곳에 처음 터를 잡은 성씨는 나씨였으나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고 그 후로 약 250년 전에 광산 김씨와 백씨가 내지, 봉산에서 이주해 와서 살았다 한다.


▶ 마을의 연혁

-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의 행정구역 폐합때 입암, 신평, 용강, 동작, 서작, 종방, 학림리 각 일부가 우치면 용강리로 통합됨

- 1935년 10월 1일 광주군이 광산군으로 개칭되면서 광산군 지산면이 됨

- 1957년 11월 6일 광주시에 편입되어 용강동 관할이 됨

- 1957년 12월 2일 121개 동을 51개 동으로 축소 운영할 때 지산출장소 우치동 관할이 됨

- 1973년 7월 1일 구제 실시에 따라 서구 관할이 됨

- 1980년 4월 1일 서구 관할의 우치동은 북구가 신설됨에 따라 북구 관할이 됨

- 1986년 11월 1일 광주직할시 북구 우치동 관할이 됨

- 1998년 9월 21이 본촌동, 우치동, 삼소동이 통합되어 건국동이 설치됨


▶ 마을에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지명

- 장구시암 : 샘이 장구같은 모양을 하고 있어서 장구시암이라 불려졌다 한다.

- 수논 : 논에 수렁이 있어서 수논이라 불려졌다고 한다.

- 보신 배미 : 논 모양이 마치 보신처럼 하고 있어서 보신 배미라 불려졌다 한다.

- 진태골 : 논에 오리를 만들어 대나무에 매달아 놓았다고 해서 진태골이라 불려졌다고 한다.

- 동산 배미 : 논에 동산이 있다고 하여 동산 배미라 불려졌다고 한다. 기타 죽 배미, 갈무골, 고네, 중반, 가지미, 철나배미 등의 지명들이 전해내려 오고 있다.




- 무드리 향토사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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