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

용두동

● 동명의 유래 

용두동(龍頭洞)은 본래 광주군 갑마보면의 지역으로서, 뒷산이 용머리 형국으로 되었다하여 龍頭라 하였다.
하지만 이는 견강부회이다. 본래 이곳은 담양과 창평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합수되어 흘러내리는 곳으로 물줄기가 매우 구불구불한 곳이므로 물줄기가 마치 용이 굼틀거리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이곳에 ‘龍’자가 들어간 지명이 많이 생기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이곳의 중심 마을인 伏龍마을도 물줄기가 합수되는 곳이기 때문에 불리는 지명이다. 때문에 ‘龍頭’ 마을은 伏龍 마을보다 물줄기의 상류에 위치한 마을이기 때문에 ‘伏龍’ 마을에서 ‘龍’자를 취하고 물줄기의 상류라는 의미에서 ‘頭’자를 취하여 지어진 마을명이라 생각한다.



* 용두(龍頭)마을


▶ 마을의 유래

용두마을의 마을의 뒷산이 용의 머리 형국으로 되었다고 하여 용두마을이라고 불려졌다고 한다. 마을 뒷산과 거진마을 중간지점과 마을 앞 논과 밭에서도 선사 시대의 것으로 여겨지는 토기조각들이 많이 발견되었는데 이 곳은 지리적으로 강을 가까이 하고 있어서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았을 것이라고 예상된다. 구체적으로 마을이 형성된 시기는 약 350여년 전으로 번남 박씨 朴世格씨가 나주에서 이주하여 처음 터를 잡았다고 전해진다. 이 후 자손이 번창하여 해방 전까지는 70가구가 넘는 번남 박씨들의 자작일촌 이었으나 광산 김씨, 청주 한씨, 진주 정씨 등 타 성씨의 유입으로 산성촌이 되었다.




- 무드리 향토사료집 - 



▶ 마을의 연혁

- 조선후기 호구총서(1789) 기록에 지금의 이 지역으로 보이는 용두촌, 지상촌, 지하동이 나타나 있다.

- 1914년 4월 1일 행정구역 폐합 때 거상리, 거하리, 신기리의 각 일부가 삼소지면의 하대리 일부지역을 병합하여 용두리라 해서 본촌동에 편입하였음

- 1935년 10월 1일 광주군이 광산군으로 개칭되면서 용두동 관할이 됨

- 1957년 11월 6일 광주시에 편입되어 용두동 관할이 됨

- 1957년 12월 1일 121개 동을 51개 동으로 축소 운영할 때 지산출장소 본촌동 관할이 됨

- 1973년 7월 1일 구제 실시에 따라 서구관할이 됨

- 1980년 4월 1일 서구관할의 본촌동은 신설된 북구관할이 됨

- 1986년 11월 1일 광주직할시 북구관할 본촌동이 됨

- 1998년 9월 21일 본촌, 삼소, 우치동이 통합되어 건국동이 됨


▶ 마을에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지명

- 거북고개 : 용두마을 남쪽, 거상으로 넘어가는 고개

- 도치 배미 : 도끼와 바꾼 논

- 구래실 : 바닥이 깊고 비옥한 논

- 산두 배미 : 나락을 논에 심지 않고 밭에 심었다고 한다.

- 정짓등 : 정자나무가 있었던 곳

- 신들메 : 신들린 산

- 자래봉 : 자라모양의 산봉우리

- 배나무 잔등 : 500여년 전에는 이 지대가 바다였는데 배가 넘나들었다는 곳

- 곱은골 : 지야동과 경계가 되는 논

- 갱변 : 냇가에 있는 들

- 뭇도랑가상 : 뭇몰을 넘쳐흐르는 도량 옆

- 소반 배미 : 소반같이 생긴 논

- 장재고개 : 본촌동과 용두동의 경계에 있는 논

- 뛰엄바위 : 아이들이 뜀뛰기를 하며 놀았던 바위

기타 헌솥골 등이 있다.


* 거상(巨上)마을


▶ 마을의 유래

약 200년 전에 홍주 송씨의 선조가 충청도 홍주에서 난리통에 당쟁을 겪어 쫓겨다녔다고 한다. 이중 고을 원님으로 계시던 두 분이 신양지에 터를 잡아 살다가 그 터가 좋지 않다고 하여 거상으로 옮겨 터를 잡았다고 한다 그 후 마을에서 4명이나 과거에 급제를 함으로써 양반마을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한다. 원래 이 마을은 큰 배의 형상을 하고 있다하여 거진이라 했으나 지금은 거상으로 바뀌고 바로 옆 마을을 거진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름이 바뀌게 된 연유는 알 수가 없다한다.


▶ 마을의 연혁

-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의 행정구역 폐합때 거하리가 본촌면 관할 용두리에 편입됨

- 1935년 10월 1일 광산군 지산면이 됨.

- 1957년 11월 6일 광산군 지산면 16개리가 광주시로 편입될 때 광주시 용두동이 관할이 됨

- 1957년 12월 1일 지산출장소 관할 우치동이 121개 동을 51개 동으로 축소 운영됨.

- 1973년 7월 1일 구제실시에 따라 지산출장소 본촌동은 서구 관할이 됨.

- 1980년 4월 1일 서구관할의 본촌동은 신설된 북구관할이 됨.

- 1986년 11월 1일 광주시가 광주직할시로 승격될 때 광주직할시 북구 본촌동이 됨.

- 1998년 9월 21일 본촌동, 우치동, 삼소동이 통합되어 건국동을 설치하여 현재에 이름.


▶ 마을에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지명

- 탁주 배미 : 논이 싸서 탁주와 바꾸었다고 하여 탁주 배미라 불려졌다 한다.

- 된장사리 : 된장과 논을 바꾸었다고 하여 된장사리라 불려졌다고 한다.

- 새터 : 마을 아래에 위치한 집들로 뒤늦게 집들이 형성되어 있는 곳을 새터라 불렀다 한다. 기타 거상방죽, 때쭈골 등의 지명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 거진(巨辰)마을


▶ 마을의 유래

이 마을에 처음 터를 잡은 성씨는 서씨와 마씨로 구전되고 있을 뿐 그 시기와 연유는 밝혀지지 않는다. 그 뒤 입향한 성씨는 광산 김씨로 200년 전에 터를 잡았다고 한다. 지금은 광산 김씨, 능주 구씨 등 여러 성씨가 모여 살고 있다.


▶ 마을의 연혁

- 1914년 4월 1일 행정구역 폐합 때 감마보면 거하리가 본촌면 관할 용두리에 편입됨.

- 1935년 10월 1일 광산군으로 개칭되면서 광산군 지산면 관할이 됨.

- 1957년 11월 6일 광주시에 편입되어 용두동 관할이 됨.

- 1957년 12월 2일 121개 동을 51개 동으로 축소 운영할 때 지산출장소 본촌동 관할이 됨

- 1973년 7월 1일 구제실시에 따라 지산출장소 본촌동은 서구 관할이 됨.

- 1980년 4월 1일 서구관할의 본촌동은 신설된 북구관할이 됨.

- 1986년 11월 1일 광주시가 광주직할시로 승격될 때 광주직할시 북구 본촌동이 됨.

- 1998년 9월 21일 본촌동, 삼소동, 우치동이 건국동으로 통합되어 오늘에 이름.


▶ 마을에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지명

- 괴내 : 방죽 밑의 지역을 괴내라 불렀다 한다.

- 포전밭 : 푸석푸석 할 정도로 건조한 밭을 포전밭이라 불렀다 한다.

- 큰고개 : 새터마을의 옆길로 복룡마을로 가는 산길을 큰고개라 불렀다 한다.

- 거진방죽 : 거진에 있는 방죽을 거진방죽이라 불렀다 한다. 기타 거진제 등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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