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

양산동

● 동명의 유래 

양산동(陽山洞)은 본래 광주군 석제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양지리, 내촌과 갑마보면의 신하리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양산리라 해서 본촌(지산)면에 편입하였는데 1957년 광주시에 편입되어 생긴 동이다.
그러므로 陽山洞은 陽池(陽地)로부터 유래된 지명임을 알 수 있다. 陽山洞의 陽地 마을은 본래 陽池마을이었는데 이곳이 따뜻한 陽地라는 좋은 의미를 붙여 陽地라는 한자를 취하여 표기하게 되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래서 지금도 양지 마을은 陽地, 陽池 두가지 한자로 표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陽山 지역에는 ‘안들메’라 불리는 마을이 있는데 이곳은 內村이라 불리는 곳이며 ‘안들매’는 內村과 들메(野山, 또는 坪山)이라 불리는 마을이 합하여 불린 지명이다. ‘들메’는 연제동에 있는 마을인데 이곳의 들메와 합하여 안들메라 불리게 된 지명이다. 陽池는 저수지로부터 유래한 지명이다. 이곳 陽山에는 陽山저수지가 있다. 이 저수지를 일명 陽池라 하였다. 그러다가 저수지의 기능이 쇠퇴하면서 陽池보다는 陽地라는 의미로 바뀌면서 陽山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 양지(陽地)마을의 유래 

이 마을 주변 지역에 음지와 양지지역이 있는데 이 마을이 위치한 지역이 양지 지역이어서 양지 마을이라고 했다고 한다. 음지 지역은 지금의 전매청이 위치한 지역이라고 한다. 이 마을에 처음 터를 잡은 성씨는 진주 정씨로 정충교(63세)씨의 13대조인 정 계도가 터를 잡았다고 한다.

이후 마을의 역사를 살펴보면 진주 정씨가 번성하여 큰 권세를 지녔을 때 진주 정씨의 외가인 청암 이씨에게 큰 압박을 가했다고 한다. 세월이 흐른 후 다시 외가인 청암 이씨의 자손 중 암행어사가 나왔는데 이 암행어사를 통해서 진주 정씨에게 보복을 하였고 그 사건으로 진주 정씨가 쇠락했다고 한다. 이후 담양 이씨가 들어와 살았고 담양 이씨의 외가로 두었던 하동 정씨가 들어와 현재에 이른다고 한다. 현재는 하동 정씨 20여 가구, 전씨 15가구, 진주 정씨 5가구 등과 여러 성이 어우러져 살고있는 산성촌이다.


▶ 마을의 연혁

- 조선후기 기록인 호구 총서의 동면항목에 지금의 이 마을로 보이는 양지리가 나타남.

- 1914년 4월 1일 행정구역 폐합 때 석제면의 양지리가 본촌면 관할의 양산리에 편입됨.

- 1935년 10월 1일 광주군이 광산군으로 개칭되면서 광산군 지산면 관할이 됨.

- 1957년 11월 6일 광주시에 편입되어 양산동 관할이 됨.

- 1957년 12월 2일 121개 동을 51개 동으로 축소 운영할 때 지산출장소 본촌동 관할이 됨.

- 1973년 7월 1일 구제실시에 따라 지산출장소 본촌동은 서구 관할이 됨.

- 1980년 4월 1일 서구관할의 본촌동은 신설된 북구관할이 됨.

- 1986년 11월 1일 광주시가 광주직할시로 승격될 때 광주직할시 북구 본촌동이 됨.

- 1998년 9월 21일 본촌동, 삼소동, 우치동이 건국동으로 통합되어 현재에 이름.


▶ 예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지명

- 조산 : 개구리모양의 지형(지금의 경로당 자리)

- 사주 : 뱀의 모양을 닮은 지형(지금의 양지마을) 기타 약 배미, 둠벙 배미, 대산미테, 모가쟁이, 오동나무 밭, 정갱이, 진 배미, 장구 배미, 납딱 배미, 밖 꾸리, 안 꾸리, 사독골, 앙난골, 더마래, 큼골, 좁은골, 안골, 맞두골 등의 지명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 무드리 향토사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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