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

민요

민요는 민중들 사이에서 저절로 생겨나서 전해지는 노래를 두루 일컫는다. 특정 개인의 창작이거나 아니거나 창작자가 문제되지 않는다. 그리고 악보에 기재되거나 글로 쓰이지 않고 구전된다. 엄격한 수련을 거치지 않고 생활하면서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다. 악곡이나 사설이 지역에 따라 노래부르는 사람의 취향에 맞게 노래부를 때의 즉흥성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 민요는 이런 특징을 지니기에 민중의 소리이고, 민족의 정서를 가장 잘 함축하고 있는 예술이라고 평가된다.
민요는 이 지역 주민들의 공통된 생각과 느낌을 노래한 것이다. 따라서 이 민요는 그 시대에 상응하여 주민들의 생활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 가요문학이요, 민간음악이라 하겠다. 사실 이 민요는 이 지방 주민의 생활사와 그 연원을 같이 하면서 삶의 애환을 읊어 시가음악의 전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크다. 이러한 민요는 이 지방 주민의 각계각층에서 형성, 유통되어 왔기 때문에 그 범위가 넓고 내용이 다양하다.

민요의 기본적인 형태는 생활에서 일정한 기능을 하는 것이고 그 가운데 노동요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노동을 하면서 노래를 부르면 행동통일을 할 수 있고 흥겨워서 힘이 덜 들기 때문에 노동요는 전통적인 노동의 거의 전 영역에 걸쳐 구비되어 왔고 노동의 방식에 따라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불려졌다. 노동요는 최초의 민요이고 다른 여러 가지 민요를 파생시킨 모체라고 할 수 있다. 북구 지역의 경우 농업을 주로 하는 지역이 많아 특히 농업노동요가 많다.

내방요는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한 아녀자의 한을 노래한 팔자노래와 시집살이의 고단함을 노래한 시집살이노래가 많다. 또한 정련요는 임에 대한 짝사랑을 노래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광주 북구는 모든 분야에서 이 지역 발전의 중추적 구실을 하여 왔으므로 이 지역 나름의 토속적인 전통민요를 찾아보기는 매우 힘들다. 다만 이 지역이 광산구와 밀접한 지역이었기 때문에 양쪽 지역의 민요가 공통점과 유사성이 많다고 할 수 있다.

아래에 소개하는 민요는 문흥동 문화유적지 지표조사에 실려있는 내용이다.


1) 농요
<밭노래>
못다맬 밭 다 매고 나니
금봉채를 잃고 가네
금봉채를 찾을라면
내 품안에 잠들고 가소.
놀다가세 놀다가세
오늘 저녁에 어찌 그리 좋단가.
(제보자 : 1991. 8. 27. 문흥동 625, 김윤덕, 여, 65세)

2) 부요
<세월아>
세월아 봄철아
오고 가지를 말어라
아까운 이내 청춘이
다 늙어 간다.
세월아 봄철아
갈라거든 네나 가제
요네 청춘아
가거나 간게
(제보자 : 1991. 8. 24. 문흥동, 정순희, 여, 69세)

3) 정요
<사랑노래>
나 죽었다고
맘사줄 말고
나 살은 동안
날 섬겨 주소
큰 애기 꽃따러 가는데
구름은 더덩실
비실로 가네
(제보자 : 1991. 8. 25. 문흥동, 주혜순, 여, 83세)

<과부노래>
저그저 금천 비개
안단목초로 선을 둘러
둘이 비자고 지었던 비개
혼자서 비고 잠을 자니
비개 넘어로 눈물이 흘러 흘러서
한강수 되었네
(제보자 : 1991. 8. 25. 문흥동 514, 유덕순, 여, 67세)

4) 오락요
<화투타령>
정월 솔아 속히 커라
이월 매조 화사허도다
삼월 사꾸라 산란헌 마음
사월 흑사리 초시절에
오월 난초 날아든 나비
유월 목단에 살짝 앉어
칠월 홍사리 홀로나 누워
팔월 공산 달도 밝다
구월 국화 서리맞은 잎에
시월 단풍에 다 떨어졌네
동짓달 오동 비 삼십에
백설만 남기고
그 많은 인생 가버리도다.
(제보자 : 1991. 8. 27. 문흥동 324, 김을봉, 여, 77세)


이제 이와 같은 민요는 상업주의의 산물인 유행가 또는 대중가요가 보급되고, 또 한편으로는 농촌사회의 전통적 생활방식마저 해체되기 시작하면서 크게 위축 받게 되었다. 현대인들에게 민요는 그들의 일상생활과 직업생활에서 완전히 잊혀진 노래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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