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독립운동가 이주상李周庠<독립운동가>
광주의 독립 만세 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후원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이주상李周庠”



 이주상(1867~1948)은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광산. 이종욱

李鍾郁의 아들로 광주 북구 일곡동 일동 마을 출신이다.

1919년 3월 10일 광주만세운동에 그는 광주의 주도 인물들과는 아무

런 관련 없이, 두 아들 윤호允鎬, 창호昌鎬를 선두에 세운 다음 수백 명의

근처 마을 사람들을 이끌고서 대거 합세했다. 이들은 일곡과 생용 등지에

사는 이씨와 범씨, 노씨들이었다. 이렇게 시위군중이 모여들자 숭일 수피

아 학생들은 선언문과 태극기 등을 나누어 주었으며, 지도자들은 큰 태극

기를 높이 들고 군중을 인도하면서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니, 장꾼들이 모

두 호응하여 온 시장은 만세 소리로 떠나갈 듯하였다.

그는 광주 만세운동에 참가한 이유로 둘째 아들 창호와 1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대구감옥에서 복역 중 집행유예를 받고 먼저 출감하였다.

그 후 음력 6월, 평양의 국민회 회원인 장공섭張公燮으로부터 국민회

취지서와 규약서를 전달받고 그 취지에 찬동하여 전라남도 각 지역에 국

민회를 조직하고자 결의하였다. 이어 자신의 집에 모인 허원삼許元三, 최

종렬崔鍾烈, 김양숙金良淑 등 8명에게 국민회 취지서와 규약서를 설명하

고 그 취지에 찬동하는 사람을 국민회에 입회시키고 다시 새로운 회원을

가입시키고 입회비를 모금하도록 권유하여 승락을 받았다.

그리고 윤 7월 그의 집에서 이동섭李東燮 외 7명에 대하여 조선의 독립

을 도모하기 위해 국민회가 조직되었으니 이에 가입하고 각자 1원의 입회

비를 납부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후원할 것을 설득하였다. 이와같이

독립운동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전개하다가 다시 체포되어 1920년 6월

2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0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19. 3. 1. 독립활동으로 200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출전 북구 역사인물, 광주시사, 대구복심원판결문, 국가보훈처 공훈록.


-자미(紫薇)골 역사인물-읽어보기

top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