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독립운동가 김덕순金德順<독립운동가>
광주의 3·1 독립만세 시위를 주도한 독립운동가 김덕순金德順


  김덕순(1901~1984)은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광산.

광주 북구 본촌동 출신이다. 1919년 3월 10일 전남 광주군 광주면의

3·1독립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3월 6일 김복현金福鉉, 김강金剛, 서정희徐廷禧 등은

숭일학교 교사 최병준崔丙浚, 수피아여학교 교사 박애순朴愛順

등과 3월 10일 광주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만세 시위를 결행하기로 계획하

고 독립선언서를 인쇄하는 등 사전 준비를 하였다.

3월 10일 오후 3시경 광주교 아래 강둑 소牛 시장에 1,000여 명의 군중

이 모여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 만세를 불렀다. 양림동 방면에서는 기독교

인, 숭일학교·수피아여학교 학생들이 광주천을 따라 내려왔고 서문 거리

로 많은 시민이 몰려오고 농업학교 학생들과 군중은 북문 방면에서 모여

들었다. 또 지산면 쪽에서는 수백 명의 농민이 달려왔다. 이렇게 모여드는

군중을 상대로 숭일학교·수피아여학교 학생들이 태극기를 나누어 주었고,

시위군중은 태극기를 휘날리고 대한독립 만세를 부르며 시장을 출발하였

다. 이들은 서문통西門通을 지나 우체국을 돌아 본정통本町通을 행진하

는 등 광주 시내의 중요한 거리를 누비며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시위에 참여하였던 수피아여학교 학생 김덕순은 체포되어 1919년 4월

30일 광주지방법원에서 독립선언서 등 독립의 취지를 기재한 격문, 독립

가獨立歌 등 태극기 한 가마를 광주 생도들에게 배포하고 수천의 군중

과 함께 광주천변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조선 독립 만세를 부르면서 시내

를 행진하였다는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8년에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

현충 시설로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 256(광주 수피아여자중·고등학교

내)에 1919. 3. 10. 광주 3·10만세운동에 앞장서서 만세를 부르다가 일본

경찰에 끌려가 재판을 받고 옥고를 치른 2명의 교사와 21명의 수피아여학

교 학생들의 애국정신을 길이 기념하기 위하여 수피아 총동창회에서 모금

액 2천만원과 광주광역시 지원금 4천만원을 들여 1995. 5. 10. 동상을 건

립하였습니다.


 - 교사 -

朴愛順, 陳信愛

- 학생 -

洪順南, 朴永子, 崔敬愛, 楊泰元, 金弼浩, 林眞實, 高連紅,

朴聖淳, 河永子, 康華善, 李羅血, 崔秀香, 李泰玉, 金良順,

梁順喜, 尹血女, 金德順, 曺玉嬉, 李奉錦, 金安淳, 洪承愛,


출전 광주시사, 판결문, 한국독립운동사.


-자미(紫薇)골 역사인물-읽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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