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모와慕窩 노계열盧啓悅<효자,열부>
아홉 살 때부터 맹인인 어머니를 봉양한 “모와慕窩 노계열盧啓悅”

 노계열(1813~1864)은 조선 후기의 효자. 자는 몽우夢佑. 호는 모와慕

窩. 본관은 광주. 신암愼菴 필영弼英의 아들로 광주 북구 일곡동 출신

이다.

 천성이 지극히 효성스러웠는데 4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9세에 모친이

안맹眼盲이 되어 물건이 보이지 않음에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않았고, 그

가 성인과 같이 나무하고 고기 잡아 정성을 다해 봉양하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상례를 갖추어 장사지내고 여막廬幕을 하고 자식된 도리를

다했다.

1864년(고종 3)에 졸하였다. 1891년(고종 28)에 향당의 유림이

천거하여 목사 민선호閔璿鎬가 김규흥金奎興 관찰사에 천거하니

도백道伯이 예조禮曹에 추천하여 1892년(고종29)에 조봉대부朝奉大夫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제수하고 정려旌閭를 명하니 송사 기우만

奇宇萬에게 정려기旌閭記를 받아 정려를 건립하였다.

세월이 흘러 정려가 퇴락하자, 후손들이 1963년 그 자리에 효자 정려

각 유허비를 건립하였다. 유허비의 크기는 높이 130cm, 폭 43cm, 두께

18cm이다.

기우만이 쓴 정려기는 다음과 같다.



                                         盧孝子旌閭記

聖人爲喪制。許童子不杖。爲不能病也。然則童子而能病。非恒人可

及。若孝子四歲而孤。哭父過哀。此豈敎之能使。學之可致。聞者不能無

其豈然於孝子。而孝子近故。今人耳目可接。其言不爲無徵。至性者然歟。

慈母失明。不能視物。孝子方九歲。不離傍側。定省甘旨。無不如其意。

積三十年無違言。癠則嘗糞嘗藥。祝天願代。靡誠不殫。喪則哀毁廬墓。

惡獸知感。道司直指後先裦啓。蓋有公議可徵。節孝遺風。歷世有未泯者

歟。今上辛卯命旌。翌年壬辰。贈童蒙敎官。孝子諱啓悅。節孝公俊恭。大

司成光利。參判希瑞。蓋其遠近顯祖云。旌在所居日谷。光州也。光吾先

子先考妣四尺所託。先子嘗於光人之請。屢致力焉。今於胤子汶奎之請。

吾何忍辭。孝子再從孫鍾龍又從余遊。以申其請。記其事如此。


출전 광주읍지, 광주의 문화유적, 일곡동 북구 문화유적조사보고서.


-자미(紫薇)골 역사인물-읽어보기

top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