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이몽린(?~1598)은 조선 중기의 무신. 자는 경시慶時. 호는 죽오竹塢. 본
관은 함평. 결結의 아들로 광주 북구 오룡동 미산 마을 출신이다.
그는 당시 뛰어난 선비로 모든 벼슬을 마다하고 오로지 자연경관을 즐
기고 학문연구에 몰두한 인물이었다. 오룡동 미산 마을 뒷산 정마봉停馬
峰 아래 영산강이 바라보이는 곳에 임진왜란 이전에 그가 지어 유유자적
했던 남강정南江亭이 있었으나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그는 생원과 음사로 주부를 역임했는데, 임진왜란 때에 형 몽구夢龜가
의병을 인솔하고 충무공 막하에 있다가 충무공의 천거를 받아 본영 우후
虞候가 되었다. 뒤에 경상도로 다시 가서 좌별장左別將으로서 전선 23척
을 인솔하고 정운鄭雲, 김완金浣 등과 함께 노량해전에서 적선 12척을 격
파하였다.
1597년 정유재란에 영등포에서 적선 30여 척을 불사르고 왜장 금단선
金團扇을 분취奮取하여 조정에 진상進上하는 등 전공을 세우고 전사하
였다.
전사한 형의 비보를 듣고 순절에 원통하고 분하여, 형이 죽고 아우가 살
아서 구차히 생활하는 것은 신하의 도리가 아니라 생각하고, 백여 명의 의
사義士를 모아 가동을 거느리고 군량軍糧 백여 석을 사들이어 이충무공
막하에 들어가 적과 격투한 끝에 적 수십급數十級을 참수하고 왜선 100
여 척을 격파시켰다.
1598년 수사水使 정여린鄭如麟, 김해룡金海龍과 더불어 적을 침공하
다가 노량 싸움에서 적의 탄환을 맞고 전사하였다.
1605년 선무 원종훈 3등에 기록하고 순조 때 포충褒忠을 했다.
출전 광주읍지, 호남절의록, 호남 정자기행, 북구 문화유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