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의병장 이백춘李百春<충신,의병>
의병장으로 왜군의 포로가 되었으나 굴복하지 않고 순절한 “의병장 이백춘李百春”

 

  이백춘(1537~1592)은 조선 중기의 의병장. 자는 영경榮卿. 본관은 함평.

병사 종우從愚의 증손으로 광산구 등임동 방해 마을에서 태어나 1558년

광주 북구 용봉동 중봉 마을(저불)로 이사했다.

천성이 강직하고 문학 절행이 뛰어난 그는 용봉동으로 옮긴 그해 사마시

에 급제한 뒤, 마을에 읍취정挹翠亭을 짓고 세심천洗心泉을 만들어 후학

을 양성하고 봄과 가을 향약을 강학하였다.

1590년(선조 23) 사옹원봉사司饔院奉事로 임명되었고 1592년 임진왜

란이 일어났다. 이때 중앙 관리로부터 지방 아전에 이르기까지 모두 도망

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미 임금을 호종하지 못하였으니 마땅히 직분을

지켜 죽으리라.”하고 끝까지 항거하다가 왜군의 포로가 되었다.

그리고 조금도 얼굴빛을 변하지 아니하고 적을 꾸짖으며 굴복하지

않다가 그해 9월 23일 순절하였다. 1605년 선무원종공신 2등에 록선되어

1997년 보령 호국사에 위패를 봉안하였다.

그의 묘는 1980년 어린이대공원이 조성하면서 일곡동 호항동虎項洞으

로 옮겼다.



출전 북구 역사인물, 조선왕조실록, 광주읍지, 북구 문화유적, 호남절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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