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이완근(1545~1615)은 조선 중기의 의병장. 자는 백인伯仁. 호는 서암瑞
菴. 본관은 광산. 아버지 춘년春年과 고성채씨의 아들로 광주 북구 운암
동 대내 마을 출신이다.
어릴 때부터 힘과 재주가 탁월하고 특히 비력臂力이 과인過人이더니 의
기지사義氣之士인 김충용金忠勇, 이충립李忠立과 상허相許하였다. 주위
의 칭송을 받았으며 재종형 세환世環과 뜻이 맞아 매사에 의기투합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광주 목사인 권율이 널리 의기지사義氣之
士를 모집하여 막하 장수가 되어 주부에 제수되었다. 이후 이치전투에 전
투 부대장이 되어 참전하였다.
1593년(선조 26) 2월에 명군明軍에게 패하여 서울에 집결한 왜군이 전
세를 역전하려고 30,000 대병으로 행주산성을 포위하여 3진으로 교체하
며 연속 9번을 공격하였으나 권율 장군과 민관이 일치단결하여 사력을 다
해 항전하며 왜적을 물리치니 왜군은 막심한 장병의 손실로 이제는 견디
지 못하고 퇴각하고 말았다. 이 싸움에서 용전勇戰하는 그를 보고 권율
은 “한漢의 마이馮異와 같다.”고 격찬하였다고 전한다. 행주대첩 전투에
서 전과를 올려 지세포 만호에 제수되어 수군통제사 이순신 막하에서 경
상도 남해안에 성을 쌓고 웅거해 있는 왜적을 물리치도록 하였다.
정유재란 때는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과 전라북도 남원시 동면 경계인
소백산맥에 있는 팔량치에서 재종형 이세환과 함께 적과 분투하여 적장
의 목을 베고 대승하였다.
1602년에 세운 행주대첩비에 새겨진 막하유사 8명 중 한 사람이며,
1605년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2등에 녹훈되었다.
세환과는 재종간으로 일신의 크고 작은 희생을 감수하고 과감히 참전
하여 국난극복에 큰 공을 세운 선무원종공신으로 한 집안에서 두 명의
임란 공신이 되었다.
뒤에 금산 금곡사金谷祠에 배향되었다. 금곡사는 일제강점기에 헐리고
지금은 진산면 묵산리 충장사에 배향되었다.
출전 북구 역사인물, 광주읍지, 호남절의록, 북구 문화유적, 충의사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