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오곡梧谷 류인식柳寅湜<처사,선비>
향리의 사표 “오곡梧谷 류인식柳寅湜”


  류인식(1879~1951)은 일제강점기의 유학자. 자는 무경武卿. 호는 오곡

梧谷. 본관은 문화文化. 양정헌養靜軒 기찬基瓚의 아들로 광주 북구 오

치동 하오치 마을에서 출생하였다.

용모가 단아端雅하고 재주가 총명하고 민첩하여 글을 배움에 어른의

독촉을 번거롭게 하지 않더니 약관弱冠에 아우 인호寅浩와 함께 송사松

沙 기우만奇字萬의 문하에서 자신을 위하는 학문을 독실히 익혀 향리의

사표師表가 되었다. 한편 효우孝友가 지극할 뿐 아니라 성의와 공경으로

몸을 닦고 법도와 예절로서 집을 다스리며, 의리로서 자녀들을 가르치고

신의로서 사람을 대하였다.

  일찍이 향리의 후생들에게 학문을 가르쳤는데 항상 이르기를 “성현의

도道는 효제충신孝悌忠信에 지나지 않으니 바로 이에 힘쓸지어다.” 하고,

또 자질子姪들에게 이르기를 “오직 서책을 가까이하고 장기와 바둑을 멀

리 할지니라.”하였다.

때때로 술을 마련하고 벗들을 초청하여 시부詩賦로서 쌓인 회포를 풀

었으며, 문학이 유여하고 지조가 고상하여 많은 사우士友의 추중을 받았

으며, 특히 송사松沙 선생이 호기號記를 지어 주었다.

향년 73세로 별세하니 묘소는 지금 광주시 삼각동 후록後麓에 모셔

졌다.

  5남 5녀를 두니 아들은 동렬東烈, 수열壽烈, 광렬次烈, 병렬昞烈, 흥렬

洪烈이요, 딸은 광산 노지영盧智永, 영천 이병구李秉龜, 광산 이승찬李承

燦, 하동 정찬룡鄭燦龍, 광산 정제섭鄭濟燮에게 출가하였다. 묘갈명은 광

산 이민수李玟秀가 지었다. 자손은 광주시 오치동에 세거하고 있다.



출전 북구 역사인물, 광주시사.


-자미(紫薇)골 역사인물-읽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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