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운파雲坡 김진현金珍鉉<처사,선비>
구한말의 강직한 지식인 “운파雲坡 김진현金珍鉉”



  김진현(1878~1966)은 구한말의 유학자. 자는 경유景儒. 호는 운파雲坡.

본관은 광산. 만포처사晩圃處士 재화在華의 아들로 광주 북구 풍향동에

서 출생하였다.

어려서 집에서 기초 학문을 닦은 다음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에게 수

업하였다. 따라서 노사의 수제자격인 노문삼자 가운데 영남에서는 정재

규, 호남에서는 정의림 등에 의해서 노사의 학문이 계승되었다. 장성의 기

우만과 함께 호남지역에서 노사학파의 확산을 위해 영광의 이종택李鍾

宅, 공학원孔學源, 능주의 양회갑梁會甲, 옥과의 여창현呂昌鉉, 광주의

김진현金珍鉉, 장성의 기노백奇老柏, 고창의 성경수成卿修 등이 노사학

파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1895년(고종 32) 명성황후 시해사건이 일어나자 송사 기우만 선생이 일

으킨 의병 활동에 참여했으나 뜻을 펼칠 수 없자 세속과의 인연을 끊고서

자신이 지은 운파재雲坡齋에 숨어 살면서 제자를 양성하면서 추앙받은

문학 절의로 석음石陰 박노술朴魯述, 창성滄醒 김보수金寶洙 등 당대에

일대의 걸출한 벗들과 기우는 국운을 걱정하는 유유상종한 인물의 흔적

이 남아 있다.

  그는 부친이 지은 청음정에서 학문을 강구하고 유유자적했던 서재였으

나 도시 개발로 정자는 없어졌다. 이 정자에 구한말 호남 의병장 고광순

高光洵, 기삼연奇參衍, 김준金準, 경술국치에 죽음으로 항거한 황현 등

의 우국충정을 시로 노래하는 등 우국충정으로 삶을 일관했던 난와難窩

오계수吳繼洙, 최익현崔益鉉, 조종필趙鍾弼, 기우만奇宇萬, 기재奇宰,

이근호李根澔, 춘담春潭 기동준奇東準 등과 학술 관계로 교유했던 그들

의 시가 남아 있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리고 율계栗溪 정기鄭琦, 경

당敬堂 최인환崔仁煥, 쌍석雙石 이용희李熙容, 죽하竹下 윤종림尹宗林,

춘파春坡 고언주高彦柱, 선중善仲 범형식, 운암雲岩 기낙도奇洛度, 노암

老庵 양효묵梁孝默, 오강梧岡 김영철金永喆, 외당畏堂 고한주高漢柱 등

과 교류하며 시를 남겼다.

  그는 한일 합방 이후 일본인 다지마田島가 와서 유적儒籍에 날인捺印

하면 식전息典이 있을 것이라며 날인을 요청하자 분개하며 호통쳐 돌려보

내기도 했던 강직한 지식인이요 처사였다.

  그는 시문에도 능해 초은정시회樵隱亭詩會, 충원미국시사회忠院薇菊

詩社會, 운림당시회雲林堂詩會, 풍영정시회風詠亭詩會, 오산정시회吾山

亭詩會, 청음정아회淸陰亭雅會, 청심당속회淸深堂續會, 연파정개회蓮坡

亭開會 등에 참여했다. 백양사 쌍계루의 정포은선생판상운鄭圃隱先生板

上韻을 비롯해서 100여 곳에 많은 시문과 기문을 남겼다.

1924년 장성 고산서원의 담대헌澹對軒 중건 때 25냥을 성금으로 내

었다.

  1933년 중구일重九日에 동료 제자들과 스승의 지우知友 등 300여 명

을 모아 채국계採菊契를 창계하였다. 그는 이미 강의계講義契를 만든 바

있고 채국계의 창계를 지원하였으며 해방 후 난심계蘭心契까지 결성하는

등 시문을 좋아하고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즐겼다.

  『운파유고雲坡遺稿』는 6권 2책 석인본으로 1978년 조카영만永滿이

편집하고 간행하였다. 권1에는 부賦와 시詩가, 권2에는 서書와 화수록花樹錄이,

권3에는 서序, 기記, 발跋이 수록되어 있으며, 권4에는 잡저雜

著, 제문祭文, 권5에는 비문碑文, 묘표墓表, 행록行錄, 행장

行狀이 권6에는 부록이 수록되어 있다.


출전 운파유고, 광주시사, 북구 문화유적.


-자미(紫薇)골 역사인물-읽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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