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난실蘭室 김만식金晩植<처사,선비>
취가정을 세운 향약실천의 선구자 “난실蘭室 김만식金晩植”



  김만식(1845~1922)은 조선 후기의 유학자. 자는 사성司晟. 호는 난실蘭

室. 본관은 광산. 홍태洪泰의 아들로 충효동 충효 마을에서 출생하였다.

천성이 온화하고 효성과 우애가 지극하였다. 입재立齋 송근수宋近洙에

게 사사했고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과 종유하여 문예가 세상에 드러났다.

과거에 뜻을 두어 공영문公令文을 습득하여 향시에 세번 장원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성현경전에 전념 초학방향初學方向이란 책자를 지어

서 후학들을 지도하였다.

  그는 임진왜란 때 조선의병의 장수였던 충장공忠壯公 김덕령金德齡의

유덕遺德을 기리기 위해서 취가정醉歌亭을 여러 문족門族들의 협력을

받아 1890년(고종 27)에 최초 창건하고 보존 관리하였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로 이현규와 함께 후학들을 지도하고, 회암晦庵

주자朱子의 남전여씨藍田呂氏 향약을 모방하여 마을에서 시행하면서 마

을은 주민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였기 때문에 흉년이 들면 먹을 것을 구

하기 어려워 이런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마을에서는 주민을 돕기 위해 구

휼할 수 있는 농장을 개설하여 궁핍한 사람을 많이 구제하였다. 1922년

78세로 타계하였다.

  취가정은 1950년 한국전쟁으로 불에 타 없어졌으나 후손 김희준金熙俊

이 여러 족인族人들과 함께 1955년 중건重建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의 저서로 『난실유고蘭室遺稿』가 있다. 이 유고 권일卷一에 시詩

402수首가 권이卷二에 서書, 기記, 서序, 발跋, 설說, 상량문上樑文, 제문

祭文, 행장行狀, 묘표墓表, 묘갈명墓碣銘, 잡저雜著와 권삼卷三 부록附錄

에 가장家狀, 행장行狀, 묘표墓表, 묘갈명墓碣銘, 발跋로 편집되어 있다.

그가 1900년에 원효사元曉寺에 들러 남긴 시詩가 있어 소개하면

十年來往秖園西 십 년을 동산 서쪽만을 오갔더니

松檜依然繞舊溪 소나무와 전나무 여전히 옛 시내를 둘렀네.

一梘穿林寒溜滴 한 홈통 나무 뚫어 찬 물방울 떨어지고

亂藤縈樹密陰低 어지러운 등나무엔 빽빽한 그늘 드리웠구나.

銅甁曾是聞龍化 구리병 일찍이 용으로 변했다는 말 들었고

畵閣猶能許燕泥 사진누각은 오히려 제비집을 허락했구나.

古塔題名誰所證 옛 탑에 붙인 이름 그 누가 밝히리요

空山惟有夜猿啼 빈산에는 한밤의 원숭이 울음뿐이로다.



출전 북구 역사인물, 난실유고, 광주시사, 남도 정자기행.


-자미(紫薇)골 역사인물-읽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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