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기동익(1829~1897)은 조선 말기의 유학자. 호는 수곡水谷. 본관은 행주.
정현正鉉의 아들로 광주 북구 우치동 출신이다.
성품이 꼿꼿하고 용모容貌가 엄정하여 비록 외견상의 두려운 기상이
있다 할지라도 실지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은 한만汗漫함이 있어서 사람들
이 그의 속내를 알 수 없는 많은 궁금함이 없지 않았다.
노사 기정진에게 수학하였고 1889년에 미암眉巖 유희춘柳希春을 기리
는 모임에 참여하였다. 특히 예학禮學에 대한 깊은 연구를 거듭한 나머지
사마온공司馬溫公 주자朱子의 모든 예설禮設을 뽑아 일반의 인정人情
및 지리적 풍토風土에 알맞도록 이를 조절하여 한 지역의 풍습風習을 바
로 하였고 또 성리의 학문을 탐구하여 여러 후생後生을 가르치는 등의 일
을 소임所任으로 여겼다.
1891년(고종 28) 권숭입權崇立 등 상언上言으로 정려旌閭, 증직贈職 등
의 등장等狀에 연명 수결하여 참여하기도 하였다.
1879년(고종 16) 광주읍지 간행본에는 박재방朴濟邦의 서序와 윤범구
尹範龜, 기동익奇東益의 발跋이 있다. 그 구성은 발간사, 목차, 서, 범례,
건치 연혁, 군명, 관원, 성지, 도로, 방리, 산천, 제축, 장시, 교량, 성씨, 풍
속, 형승, 학교, 서원, 단묘, 공해, 역원, 사찰, 루정, 고적, 책판, 물산, 진공
물선, 상납, 호구, 전총, 전세, 대동, 균세, 봉름, 요역, 창고, 조적, 군기, 군
액, 노비, 읍선생, 인물, 재학, 충신, 효자, 효녀, 열녀, 발, 등으로 되어 있다.
그 내용은 제영題詠 등 시문과 여러 분야의 인물을 간행 당시까지 자세
히 정리해 놓아 호남의 중심이었던 광주의 사적, 문학, 인물 방면에 풍부
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특히 형승, 학교, 서원, 공해, 역
원, 사찰, 누정, 고적 등에 많은 시문을 부기해 놓았다. 학교에 수록된 성
현成俔의 「명윤당기明倫堂記」, 기대승奇大升의 「흥학비기興學碑記」
를 비롯해서 누정에 수록된 신숙주申叔舟의 「희경루기喜慶樓記」, 풍영
정風咏亭에 대한 김인후金麟厚, 이황李滉, 기대승의 시詩, 고적에 수록
된 이색李穡의 「석서정기石犀亭記」, 박상朴祥의 「향안서鄕案序」 등
이 주목할 만한 것들이다. 인물, 재학에는 염장閻長, 김태현金台鉉, 정철
鄭澈, 김장생金長生 등 신라부터 조선까지의 많은 인물에 대한 공적이 간
략히 수록되어 있다. 한편 제축, 장시, 진공물선, 상납, 호구, 전총, 전세, 대
동, 균세, 요역, 조적, 군기, 군액 등 경제, 재정, 군사적인 면도 충실히 기재
되어 있어 읍지 자료의 중요성이 잘 나타나고 있다.
출전 광주읍지, 지산 향토지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