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노재규(1836~1920)는 조선 말기 유학자. 자는 화서和瑞. 호는 농암聾
巖. 본관은 광주. 증호조참판 진권鎭權의 아들로 광주 북구 일곡동 출신
이다.
평소 옛 성현들의 글과 행적에 관한 일화를 좋아했고 재산을 털어 가난
한 이웃들을 도왔으며, 한말의 이름난 선비였던 송병선과 최익현과 교류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성품이 과묵하고 행실이 의로우며 지극한 효성과 학행學行이 높아 유림
의 천거로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에 오른 후 품계가 당상관堂上官 이상
으로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이르렀으나 이를 사양하고 세상을 등
진 채 임천林泉에서 학문을 하는 것으로 낙을 삼았다. 자질子姪들을 가
르치고 후손들의 교훈이 되는 「언행록言行錄」, 「자경잠自警箴」, 「계
자잠戒子箴」 등을 지어 전한 바가 있다. 또한 일가간의 친목은 물론 일
가 중에 살기가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이들을 돕는데 앞장섰다. 본시 출세
나 영달을 좋아하지 않았기에 나라에서 내리는 벼슬도 마다하고 조용한
곳에 들어가 한가로이 책을 벗 삼으면서 조그마한 모정茅亭을 지어 그 이
름을 ‘원풍정願豊亭=聾岩亭’이라 하였다. 제액題額은 담산覃山 김경규金
敬圭가 썼고 상량문上梁文은 난와難窩 오계수吳繼洙가 썼다. 그 후 당
대의 이름난 석학碩學들이 글을 지어 공의 학문과 행의行義를 가찬嘉讚
하였다.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은 수정구지우애독행(守靖求志憂愛篤行
: 정절을 지키고 뜻을 구하는 것은 나라를 걱정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일)
이라 하였고,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은 지취청한료묵진심(志趣淸閑了黙
塵心 : 뜻을 두는 바가 맑아 한가롭게 사니 더러운 마음이 다 없어짐)이
라 하였으며, 심석心石 송병순宋秉珣은 정대광명여석동맹공지입견불가
급(正大光明與石同盟共志立堅不可及 : 마음이 깨끗하고 언행이 바른 것
이 돌과 같이 헌출하며 굳은 맹서와 그의 뜻에는 아무도 이에 미치지 못
한다)이라 하고, 송사 기우만奇宇萬은 숙신선가이언불입(淑身善家異言不
入 : 내 몸을 바르게 하고 집안을 잘 다스리니 이에 딴 말이 있을 수 없다)
이라 하였다. 저서著書로 『농암유고聾巖遺稿』가 있다.
출전 농암유고, 광주읍지, 북구 문화유적, 남도 정자기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