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남포현령 노중륜盧仲崙<생진,음사>
‘광산 노씨 분묘출토 명기류’의 주인 “남포현령 노중륜盧仲崙”

 

 노중륜(?~?)은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광주. 절효공 준공의 현손으로

직산군수 노규盧珪와 남양홍씨의 아들로 광주 북구 생용동 모산 마을에

처음으로 들어와 살았다.

  세조 연간에 남포현령南浦縣令을 역임했다고 전한다. 사후에 증병조참

판의 증직을 받은 그는 생용동 모산 마을에 살았던 것으로 그의 묘가 우

치공원이 들어선 생용동 내동 마을 뒷산 기슭에 있었다.

1990년대 일곡택지 조성 직전에 발간된 조사보고서에는 1890년대부터

1900년대에 걸쳐 그의 후손들이 내동 마을 뒷산에 있는 자신들의 조상인

노중륜과 노한경盧漢經, 노옥손盧玉孫 3대의 무덤 근처에 1772년부터 누

군가 무단으로 묘를 만들었고, 이 묘가 이전되도록 조치해 줄 것을 여러

차례 광주관아에 탄원한 문서들이 수록되어 있다(향토문화개발협의회,

1993, <일곡동> 참조).

  공교롭게도 훗날 그의 3대의 묘는 광주의 역사와 문화에 특별한 기여를

했다. 1987년 생용동 내동 마을 일대에 지금의 우치공원을 조성하면서

그 3기의 묘를 이장할 필요가 있었고 이 과정에서 다수의 부장품이 발견

됐다.

  그의 묘에서는 청동으로 만든 숟가락과 젓가락이 완벽한 상태로 나왔

고, 그의 아들인 한성판윤을 지낸 노한경의 묘에서는 청동거울과 구슬 등

이, 손자인 노옥손의 묘에서는 사람과 말의 형상으로 빚은 인형 등이 출토

됐다. 이들 3대에 걸친 묘에서 나온 부장품은 ‘광산노씨 분묘 출토 명기류’

라는 이름으로 광주광역시 문화재로 지정되어 현재 광주시립민속박물관

에 소장·전시되고 있다.

  백자명기는 16점의 크고 작은 여러 모양이 같이 출토되었다. 도우陶偶

는 남녀각각 3점으로 남자는 상투를 틀어 올린 형태이고, 여자는 어여머

리를 하고 있는데, 표정만 다를 뿐 크기는 거의 비슷하다. 마형기馬形器는

말안장을 얹은 모습으로 2점이 출토되었다. 특히 이 도우와 마형기는 철사

鐵砂 안료를 바른 철화鐵畵 백자이다. 술띠는 2개로 분리되어 있으며, 7

개의 유리구슬은 가운데에 구멍이 뚫려 있다. 이외에도 국화무늬를 새긴

동경과 가위, 청동 수저 1벌이 함께 발견되었다.

  조선 전기의 유물로 추정되는 이들 명기류는 조선 시대 전기 부장품 연

구와 백자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특히 마형기는 다른 지역에서 출토

된 예가 없는 매우 귀한 자료이다.



출전 일곡동 북구 문화유적조사보고서, 광주노씨세고, 광주민속박물관 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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