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찰방察訪 김붕래金朋來<문과,무과>
경양역원의 폐해를 바로 잡은 “찰방察訪 김붕래金朋來”



  김붕래(1813~?)는 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익보益甫. 본관은 풍산. 김열

金洌의 아들로 본래 영유(永柔:평안남도 평원) 출신이다.

1852년(철종 3년)에 식년시 병과丙科 24위로 합격하였다. 김붕래가 광

주의 대표인 경양역 찰방으로 재임 시 역원의 폐해를 바로잡은 공적으로

구폐 영세불망비를 주민들에 의해 1854년 경양역 비석거리에 세웠다. 찰

방은 과거 공문서와 관수물자 등을 운송하던 교통·통신시설인 역驛의 총

책임자를 말하며, 찰방비는 이들의 선정을 기록한 비이다.

이 비가 1957년 도로 확장공사로 인해 광주공원으로 옮겨갔는데, 북구

우산동 주민자치위원회에서 2003년 12월 12일 아름다운 마을 만들기 사

업의 하나로 본래 북구 우산동 514-2번지에 있었던 찰방김공붕래구폐영

세불망비, 찰방송공택훈권학청덕거사비를 다시 옮겨 소공원을 조성하여

이 마을의 역사를 살리고자 이건移建하였다. 이곳에는 구 호전 인근 향

토문화로와 독립로가 만나는 지점의 소공원에 김붕래영세불망비金朋來

永世不忘碑, 송택훈권학청덕거사비宋宅薰勸學淸德去思碑 2기가 함께

있다. 소공원에는 북구 향토문화의 거리 입구 120㎡에 지난 57년 광주공

원으로 옮겨진 찰방비 6기 가운데 2기(김붕래 불망비, 송택훈 거사비)와

말방 4개, 물확 1개를 설치한 것으로, 조경수를 함께 심어 소공원으로 꾸

몄다.

김붕래 불망비不忘碑는 1854년, 송택훈 거사비去思碑는 1860년에 세

워진 호패형 돌비로 각각 높이 127~148㎝, 너비 53~44㎝에 그들의 행적

과 선정 등이 기록돼 있다.

그의 관직을 기록에 보이는 것을 정리해 보면 1852년(철종 3) 권지성

균관학유權知成均館學諭, 1854년(철종 5) 경양찰방景陽察訪,

1859년(철종 10) 승문원 지평持平, 1861년(철종12) 사헌부 좌랑佐郞, 1861

년(철종 12) 자여찰방自如察訪, 1867년(고종 4) 사헌부지평持平,

1873년(고종 10)성균관사예成均館司藝 신병으로 사임했다.


-자미(紫薇)골 역사인물-읽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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