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찬성공贊成公 김감金瑊<문과,무과>
서해출몰 왜구를 소탕한 서천군수 “찬성공贊成公 김감金瑊”



  김감(1476~1538)은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옥여玉汝. 본관은 광산. 아

버지 문손文孫과 울산김씨 사이에 둘째 아들로서 광주 북구 충효동 출신

이며 광산김씨 찬성공파의 파조이다.

1498년(연산군 4) 23세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1504년(연산군 10)에 식년

시 을과 1위로 문과에 급제한 뒤 승문원承文院 정자正字를 시작으로 감

찰, 지평, 헌납, 집의 대사성, 대사헌, 판결사, 예의찬성사 등의 관직을 역임

하였다.

특히 부모의 봉양을 이유로 외직에 나가기를 청원하여 장성, 합천, 영광

등지의 수령을 지냈다.

1523년(중종 18) 상을 당해 집에 있을 때 왜구가 중원을 침략해 오자 조

정에서 그를 서천군수舒川郡守로 발탁하였고 뒤에 충주목사, 남원도호부

사를 거쳐 1536년(중종 31)에 전라도 병마절도사를 지냈다. 1538년(중종

33) 10월 12일 63세의 일기로 병으로 집에서 졸하였다.

사당은 원래는 충효동 대숲에 하얀 소나무인 백송과 함께 있었는데 사

당의 구조는 30cm~50cm 크기의 돌을 이용하여 석축 기단을 조성하고

그 위에 자연석을 주초로 한 덤벙 주초로써 정면 3칸, 측면 2칸의 골기와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지붕은 겹처마로서 조선 후기 건물이다. 사당 내

부 굴도리의 배치로 보아 5량樑집이다. 주변에는 높이 10m의 백송(1968.

3. 2. 광주시 노거수 14호)이 있었으나 고사했다. 창호는 좌우 2분합문, 중

앙은 4분합문으로 띠 창살로 되어 있었다.

현재 사당은 광산김씨 찬성공파 문중에서 북구 금곡동 888(배재길 61)

에 2005년(초건 18세기)에 건립하였다. 규모는 정면 2칸 측면 2칸 골기와

맞배지붕이다.

부조묘는 2005년 이화재실로 모셔왔다. 이곳 이화재실은 김덕령장군의

동생 풍암 김덕보의 종손 별검 김수신과 그의 부인인 정경부인 하동정씨

를 배향하는 곳이었다.

문중에서는 부조묘에서 불천위 제사를 지내고 있는데 제일은 매년 음력

3월 5일이다.

김감의 신도비는 북구 금곡동 900(배제길 68)에 위치하며 신도비 전면

에 ‘유명조선국숭정대부판결사의정부예의찬성김공감신도비’라고 쓰여 있

으며 그의 9대손인 김치수가 1830년에 썼다.


출전 문과방목, 광주읍지, 광산김씨 충장공파보, 북구 역사인물, 북구 문화유적.


-자미(紫薇)골 역사인물-읽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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