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신덕균(申德均) : 1878~1908

신덕균(1878~1908)은 광주 우산동 (또는 각화동) 출신이다 초명은 덕순. 자는 정고, 호는 몽암, 본관은 평산으로 태수의 아들이다. 『광주북구지』(1994)에는 우산동 출신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호적부 제적등본』 에는 각화동  277번지로 등재되어 있다. 따라서 출신지에 대한 세밀한 연구가 필요하다. 그이 손자 후복이 현재 각화동에 거주하고 있다.

1906년 6월 최익현, 임병찬이 태인에서  호남의병을 일으킬 때 달려가서 참여하려 했으나 의병이 쉽게 패하자 중단하였다. 그는 1907년 1월에 창평에서 고왕순이 의병을 일으켜 화순을 점령하고 동복으로 진군한다는 소식을 듣고 부하들을 이끌고 달려갔으나 고광순 의병대가 도마치전투에서 패하여 해산해 버리자 광주로 돌아와 재기의 날을 기다렸다.

 그는 1907년 9월 1일을 기하여 고광순 의병대가 재기하자 가담하여 참모의 중책을 맡았으나 병력과 무기가 부족하여 신덕균은  윤영기와 함께 광주에가서 해산군인들을 소모하여 그 수가 40여 명이 되었다. 그런데 병력을 거느리고 구례로 가는데 도중에서 고광순의 전사 소식을 듣고 독자적으로 지리산을 중심으로 의병활동을 벌였다.

  신덕균은 1908년 초에 의병대를 정비하여 300여 명의 의병을 거느리고 화개로 진군하다가 왜적 30여 명을 무찌르고 지리산을 종횡하면서 적과 전투를 벌였다. 그는 차츰 병력과 장비가 부족해지자 부장에게 맡기고 광주로 돌아와 전답을 팔아 군기를 마련한 후  부대로 돌아와 전남,전북의 경계를 누비면서 활동하다가 11월 초순에  의병을 해산하고 도피 은신하던 중  7일 고부 두승산 적에게 피살되었다. 『광주시사1』(1992), 『광주북구지』(1994), 『평산신씨 광주.전남사』(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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