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무드리의 역사 | 후백제시대

신라 하대에는 각지에서 지방 세력가인 호족들이 중앙왕실에 반기를 들고 일어나 후삼국시대가 시작되는데, 그중 견훤이 892년 광주에서 기병하여 후백제라 하였다. 견훤은 상주가은 현인 또는 광주 북촌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출신지역은 정확히 밝혀져 있지 않다.
신라 효공왕 4년(900년) 완산주로 옮길 때까지 그 본거지는 무진주(광주)였다. 이후에도 아들인 용검과 사위 지견에 의해 광주성은 계속 지켜졌다. 이 시기에는 무진주, 무주, 광주가 혼용되고 있으며, 이때 광주란 명칭이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후백제의 멸망으로 그 전까지 중심지였던 광주가 나주로 옮겨진다. 이는 광주가 후백제의 본거지였을 뿐만이 아니라 나주에 고려를 세운 왕건의 지지 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후백제와 관련된 확실한 유적은 없다. 하지만 「홍지도서」(1759년)에 고려 태조가 견훤을 정벌하기 위해서 진을 친 왕조대(삼소동․왕소지로 추정), 주 북 15리에 있었다고 하는 견훤대(생용동 죽취봉 추정), 견훤이 견훤대 아래에 진을 치고 말을 기르던 방목평 등이 전하고 있으며,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지만 대개 북구의 극락강 주변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 견훤과 관련된 유적으로 생룡동의 토성터와 무진도독고성을 들고 있지만 앞으로 더욱 구체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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