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

월출동(해산마을, 금당마을)

* 해산마을


▶ 마을의 유래

해산마을은 광주, 장성, 담양의 접경지대에 있으며 마을 뒤로는 작은 산이 있어 북풍을 막아주고 남쪽은 영산강 상류지역으로 넓은 평야지역이다. 마을의 지형이 마치 바다에 사는 게의 형태를 닮았다고 해서 해산(蟹山)이라고 불려졌다가 점차 와전되어 해산(海山)이라고 부르게 되었을 것이다.
이 마을에 처음 터를 잡은 성씨는 김해 김씨로 약 300년전에 김종원(金鍾元)의 10대조인 김수귀(金壽龜)씨가 화순에서 건너와 이 곳에 터를 잡았다고 한다. 이 후 서산 정씨가 들어와 살았으며 현재는 양천 하씨, 김해 김씨, 서산 정씨등 여러 성씨가 함께 살고 있다. 이 마을은 예전부터 마을의 위세가 강해서 가마를 타고 지나가던 사람도 가마에서 내려서 지나가야 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러한 마을의 위세로 6ㆍ25동란이나 여러 역사적인 사건에도 별다른 피해가 없이 지낸 평안한 마을이었다. 다음으로 금당마을은 월출동에서 으뜸되는 마을로써 첨단지구에서 용전으로 가는 도로변 왼쪽으로 위치하고 있으며 장성과는 접경지대에 있다. 마을의 터가 금방석 같이 좋다는 뜻으로 ‘금당’이라고 하였다고 하며 언젠가는 이 마을에서 금이 나올 거라고 한다. 마을에 처음 터를 잡은 성씨는 파평 윤씨로 350여년 전에 尹相童씨의 9대조인 尹議가 충청도에서 난을 피해 처가인 서산 정씨를 따라 오다가 이곳에 정착했다고 한다. 이후 자손이 번창하여 자작일촌 하다가 근래에 타 성씨들의 유입으로 산성촌이 되었다. 이 마을은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하여 효자가 많이 나오며 특히 마을 인심이 지금까지도 아주 좋다고 하는데, 이런 이유도 마을의 이름에서 연유되었다고 한다.


▶ 마을의 연혁

- 1914년 4월1일 행정구역 폐합 때 삼소지면의 해산리가 본촌면 관할의 월출리의 편입됨

- 1935년 10월 1일 광주군이 광산군으로 개칭되면서 광산군 지산면 관할이 됨

- 1957년 11월 6일 광주시에 편입되어 월출동 관할이 됨

- 1957년 12월 2일 121개동을 51개의 동으로 축소 운영할 때 지산 출장소 삼소동 관할이 됨.

- 1980년 4월 1일 서구 관할 삼소동이 북구 관할로 편입.

- 1986년 11월 1일 광주직할시 북구 삼소동이 됨.

- 1998년 9월 21일 본촌동, 우치동, 삼소동이 건국동으로 통합되어 현재에 이름


▶ 마을에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지명

- 진 배미 : 장대처럼 논이 길어서 진 배미라고 불려졌다고 한다.

- 섬 배미: 논 가운데에 섬이 있어서 섬 배미라고 불려졌다고 한다.

- 홈 뱀미 : 홈대로 연결된 수로를 이용하여 논에 물을 대서 농사를 지어서 홈 배미라고 불려졌다고 한다.

- 둥근 배미 : 논의 모양이 둥글어서 둥근 배미라고 불려졌다고 한다.

- 미주 배미 : 논을 미주와 바꿔서 미주 배미라고 불려졌다고 한다.

- 응산봉 : 산의 봉우리가 마치 매가 산 위에 앉아서 이리 저리 둘러보고 있는 모양을 닮아서 응산봉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 매부랑제 : 산의 봉우리의 모양이 매가 산 위에서 주둥이를 이리 저리 돌리며 무엇을 노리고 앉아 있는 모습이어서 매부랑제 라고 불려졌다고 한다.

- 바우벽 : 마을 뒤편에 많은 바위가 마치 벽처럼 둘려져 있어서 바우벽 이라고 불려졌다고 한다.



* 금당(金塘)마을


▶ 마을의 유래

월충동에서 으뜸되는 마을로써 첨단지구에서 용전으로 가는 도로변 왼쪽으로 위치하고 있으며 장성과는 접경지대에 있다. 마을 앞쪽으로는 영산강지류가 흐르고 있으며 마을의 지대가 높은 산등성이에 계단식으로 위치해 있어 마을의 형태가 마치 소쿠리의 모습처럼 되어있다. 최초로 마을의 터를 잡은 성씨는 파평 윤씨이며 이후 김해 김씨, 달성 성씨 등이 살아오다가 최근에는 여러 성씨들이 함께 살고 있는 산성촌으로 주민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며 토마토 등 약간의 하우스 작물도 하고 있다.


▶ 마을의 연혁

- 조선후기 호구총수(1789) 기록에 지금 이 지역으로 보이는 금당산, 고내마을 이름이 나타남

- 1914년 4월 1일 행정구역 통폐합 때 삼소지역의 금당, 궁암, 해산, 상대, 용정, 고내리가 됨

- 1935년 10월 1일 광주군이 광산군으로 개칭되면서 광산군 지산면 관할이 됨

- 1957년 11월 6일 광주시에 편입되어 월출동이 됨

- 1957년 12월 2일 121개 동을 51개 동으로 축소 운영할 때 지산출장소 삼소동 관할이 됨

- 1973년 7월 1일 구제실시에 따라 서구관할이 됨

- 1980년 4월 1일 지야, 석곡 출장소를 없애고 북구관할이 됨

- 1986년 11월 1일 광주직할시 북구 삼소동으로 편입

- 1998년 9월 21일 본촌동, 우치동, 삼소동이 통합하여 건국동이 됨


▶ 마을에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지명

- 뽕나무 배미 : 뽕나무가 많이 있었던 논. 지금이 후동굴 앞에 있음

- 궁중바위 : 궁중에 바위가 떴다고 하여 불려진 바위 이름

- 응천보 : 보를 내려고 궁리하던 어느 날 아침에 때아닌 서리가 내려 그 자국을 따라 봇도랑을 냈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 조리터 : 조리모양의 터가 있는데 이곳을 조리터라고 한다

- 후동굴 : 금당마을 뒷편에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후동굴이라고 한다. 지금은 4~5 가구 정도만 남아 있으며 예전에는 주로 전주 이씨들이 살았으나 도둑이 자주 들어 거주하던 양반들이 떠나 버렸다고 한다.

- 강변들 : 금당동쪽에 있으며, 예전에는 강가지역 이었다고 한다.

- 낚시바위 : 지금의 경로당 옆의 바위로 예전에 그 바위 옆으로 강줄기가 흘렀는데 이 바위 위에 앉아 낚시를 즐겼던 곳이라고 한다.

- 대장굴 : 재(금당에서 장성군 진원면 학림리로 가는 고개)

- 뒷전굴 : 금당마을 북쪽에 있는 들로써 둔전이 있어서 불리어진 이름

- 반학이 : 마을 서쪽에 있는 들

- 때집 : 마을 동쪽에 있었으며 때집이 잇었던 마을





- 무드리 향토사료 - 


  • 이전글각화동
  • 다음글다음글 없습니다.
top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