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

용전동

 동명의 유래 

용전동(龍田洞)은 본래 광주군 우치면의 지역으로 일명 ‘낙촌(落村)’ 또는 ‘용전(龍田)’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시변리, 동작리, 서작리, 생룡리, 지내리, 신평리의 각 일부와 갑마보면의 지산리, 대야리, 삼소지면 해산리, 대치면 응기리의 각 일부와 갈전면의 신룡리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용전리라 하다가, 1957년 광주시에 편입된 곳이다.



* 용산(龍山)마을


▶ 마을의 유래

일제시대에 큰 우시장이 섰던 곳으로 영산강변에 위치해 지형이 낮아 물이 많고 습한 곳으로 마을에 처음 터를 잡은 성씨는 진주 정씨인 정우현씨로 1920년대에 전남 보성에서 피난을 왔다가 마을을 형성했다고 한다. 지산의 아홉마리 용 중, 용의 머리부분에 위치해서 용산이라고 했다 한다. 과거에는 마을 옆 영산강변에 제방이 없어 자주 홍수피해를 입는 저지대 지형이어서 홍수피해를 줄이기 위해 집들을 높게 지었다 한다.


▶ 마을의 연혁

- 1935년 10월 1일 광주군이 광산군으로 개칭되면서 광산군 지산면 관할이 됨.

- 1957년 11월 6일 광주시에 편입되어 용전동 관할이 됨.

- 1957년 12월 2일 121개 동을 51개 동으로 축소 운영할 때 지산출장소 우치동 관할이 됨.

- 1973년 7월 1일 구제 실시에 따라 지산출장소 우치동은 서구 관할이 됨.

- 1980년 4월 1일 서구 관할이 우치동은 신설된 북구관할이 됨.

- 1998년 9월 21일 본촌, 우치, 삼소동이 통합하여 건국동 설치


▶ 마을에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지명

- 쇠전머리 : 우시장이 섰던 곳으로 나룻배가 있었으며 그래서 쇠전머리라 불려졌다 한다.

- 용산리 장터 : 예전에 담양, 장성등 인근 지역을 상대로 한 큰시장이 섰던 곳을 용산리 장터라고 불렀다 한다.

- 집동네 : 제방 벽을 잔디로 깔았다 하여 불려진 이름이다.

- 똥매동 : 용산마을 옆에 있는 등성이를 똥매동이라 불렀다 한다.

기타 아랫버틀, 삼버틀, 용산토월 등



* 용전(龍田)마을


▶ 마을의 유래 

용전마을은 풍수지리상으로 마을의 지형이 마치 배가 흔들리는 형국이라고 하여 誨遊라고 부리우다가 어느 해 홍수가 난 이후에 물이 흔한 마을이란 뜻으로 落村이라고 하였으나 落村의 落이 떨어지다라는 부정의 의미가 담겨 있어서 이 후 영산강상류지역 인근에 아홉용(생룡, 용산, 신용, 용두, 오룡, 복룡, 용강, 용전, 거룡)과 관련하여 용이 노니는 들판의 중심지에 위치하고 있다고 하여서 용전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 마을의 형성된 시기는 약 500년 전으로 임진왜란 때 진주 정씨가 전쟁을 피하여 피난을 오다가 이 곳에 정착하여 처음 터를 잡았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진주 정씨와 광산 김씨가 함께 터를 잡았다는 설도 있어서 마을의 유래는 명확히 밝혀지고 있지는 않다. 다만 광산 김씨 김영환씨의 6대조 할아버지인 김상홍씨가 과거에 급제하여 솟대를 세웠다고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마을이 형성되었으리라고 짐작 할 수 있겠다. 최근에 김용완씨 농장에서 수백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와편과 도자기 그릇이 발견되어 마을 생성시기가 거의 확실해지고 있다. 이 후에 오씨 등이 유입되어 현재는 진주 정씨, 광산 김씨, 오씨등과 여러 성씨 등이 어우러져 300여 가구가 살고 있다. 특히 이 곳은 일제시대 때 소작회라고 하는 마을 조직이 있어서 이 지방 조작쟁의 운동의 근원지이기도 하다.


▶ 마을의 연혁

- 1914년 4월 1일 행정구역 폐합 때 우치면의 시변, 용전, 동작, 서작, 생룡, 지내, 신평리, 갑마보면의 지산, 대야리, 삼소지면의 지해산리, 대치면의 응가리, 갈전면의 신룡리등 지역이 우치면 관할의 용전리에 편입됨

- 1935년 10월 1일 광주군이 광산군으로 개칭되면서 광산군 지산면 관할이 됨.

- 1957년 11월 6일 광주시에 편입되어 용전리 관할이 됨

- 1957년 12월 2일 121개 동을 51개 동으로 축소 운영할때 지산출장소 우치동 관할이 됨.

- 1973년 7월 1일 구제 실시에 따라 지산출장소, 우치동은 서구 관할이 됨.

- 1980년 4월 1일 서구 관할의 우치동은 신설된 북구 관할이 됨.

- 1986년 11월 1일 광주시가 광주직할시로 승격될 때 광주직할시 북구 우치동이 됨.

- 1998년 9월 21일 본촌동, 우치동, 삼소동이 통합되어 건국동이 되어 현재에 이름.


▶ 마을에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지명

- 금보 : 소재들 서쪽에 있는 샘(혈보라고도 한다.)

- 다방골 : 용전 동쪽에 있는 마을

- 당산거리 : 당산나무 근처에 있는 마을

- 동작 : 용전 동편에 있는 마을

- 서작 : 용전 서편에 있는 마을

- 소재들 : 용전 서쪽에 있는 들

- 작지 머리들 : 소재들 남쪽에 있는 들. 수문이 있었던 곳이다.

- 장구달들 : 용전 동쪽에 있는 들

- 장성 배기 : 장승이 박혀 있던 들이다.

- 지래기 : 장구달 위쪽에 있는 긴 들

- 안애미 : 마을 안쪽에 있는 마을

- 선밧들 : 예전에 배가 드나들었다는 곳

- 싸래들 : 마을 북쪽에 있는 들

- 지산 장터 : 지산장이 있었다는 장터

- 채양거리 : 물이 흔한 곳이며 싸래 북쪽에 있는 들

- 개떡 배미 : 가난해서 먹을 것이 없었기 때문에 개떡 하나와 논을 바꿨다 해서 붙혀진 이름

- 세상동 : 과거 고려장이 주로 이루어진 곳으로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세상동으로 간다고 하였다고 한다. (현재는 묘가 많이 있는 곳이다.)

- 지레기논 : 논의 길이가 길다하여 불려진 이름

- 대파리봉 : 용전 뒷산에 위치한 산봉우리

- 장구달 배미 : 장구 모양의 논

- 여시매 : 여시처럼 생긴 산




- 무드리 향토사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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