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무드리의 역사 | 마한시대

마한과 관련한 유적은 우리 고을과 인접한 광산구 신창동에서 어린이 매장용 독무덤이 발견되고 있으며, 이 유적은 초기 철기시대에 속하고 있다. 이 유적에서 출토된 독무덤은 영산강 하류지역에서 유행한 대형 독무덤보다 앞선 시기이며, 신창동 독무덤에서 대형독무덤으로 발전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독무덤은 마한과 깊은 관련이 있는 유적으로 파악하고 있다. 우리 고을에서는 운암동(현 중앙여고 자리)에서 쇠뿔형손잡이와 민무늬토기가 발견된 바 있고, 우치동 용강마을 뒤편 구릉에서도 쇠뿔형손잡이가 나온 바 있어 우리 고을에도 마한시대에 사람들이 마을을 형성하여 살았음을 알려주고 있다. 이들은 나지막한 구릉이나 그 경사면에 집을 짓고 살면서 죽은 후에는 독무덤이나 흑구덩무덤을 조성하였다.
전남지방에 있던 마한의 소국들은 백제 근초고왕(369년)이 남해안에 있던 소국들을 정복하였다는 기록을 들어 4세기 중엽에 우리 고을도 백제에 복속되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이 정복기사는 마한의 중심지였던 충청과 전북지방에 대한 복속이었을 것이고, 전남지방의 경우 백제와 대립하면서 그 이후에도 영산강하류 마한의 일부 소국들은 존속하고 있었다.
전남지방은 삼한 중 마한에 속하였으며, 마한에는 54개의 소국들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중 전남지방에 13개 정도의 소국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국명과 지역에 대하여 학자들에 따라 다양한 주장을 하고 있다. 몇몇 학자들이 주장한 위치비정도 발음의 유사성과 지명의 변천 등으로 추정하였기 때문에 정확하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고을을 포함한 광주 또는 광주 인근지역에 어떤 소국이 있었는가도 구체적인 자료가 없다. 하지만 마한 소국들 중에는 장성 진원, 나주, 광산 그리고 극락강변 등이 있어 우리 고을도 마한의 한 소국에 속하였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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