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

문흥동

● 동명의 유래 

문흥동(文興洞)은 본래 광주군 오치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송정리와 문산리, 용주리의 각 일부와 서양면의 신흥리 일부와 두방면의 각화리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문산과 신흥의 이름을 따서 문흥리라 하여 서방면에 편입되었다가, 1955년 광주시에 편입되어 생긴 동이다.


▶ 문산, 송정, 수용소, 여술마을의 유래

- 문산(文山)마을 : 문산마을은 원래 밀매(민매)라 하였는데 마을이름을 한자로 바꾸면서 민매는 민둥산이기 때문에 독산(禿山)이라 하였다가 한말경에 문산(文山)이라 하였다. 또 문산을 대문산이라고도 부르는데 이것을 부락을 이루고 있던 마을 중에서 가장 으뜸이 되는 마을이었기 때문에 주민들이 그러게 불렸다고 한다. 마을이 형성된 시기는 임진왜란 이전에 백(白)씨가 터를 잡아 살았다고 전하며, 濟州梁氏인 양재현(梁載賢)이 임진왜란 직전에 이곳에 들어와 터를 잡고 살다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고경명과 함께 금산에서 순절하였는데 이 후손들이 자작일촌을 이루며 살아왔다.

- 송정(松亭)마을 : 송정마을은 문산마을과 같이 임진왜란 이전에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마을에 처음으로 들어온 성씨는 경주 김씨인 김갱경(金坑慶)이 터를 잡고 살았으며 이 후손들이 자작일촌을 이루며 살아왔다. 이 마을 이름을 송정이라 한 것은 마을 앞에 장정 3 ~ 4명이 안아야 소이 닿을만큼 큰 솔정자나무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이 나무는 가지가 ㄱ字모양으로 땅쪽으로 굽어 마치 날개가 달린 듯 특이한 형태를 띠고 있었는데 해방바람에 쓰러지고 말았다고 한다.

- 수용소(收容所) : 수용소는 일명 정착촌이라고도 하며 1950년대 6.25동란 때에 포로병으로 잡혀있던 포로들을 일시에 석방함에 따라 이곳에 수용하여 마을이 형성되었다.

- 여술(狐洞) : 여술마을은 마을 뒷산에 여우가 깃들었던 도굴이 있어 여우가 출몰하였다하여 여술이라 했는데 한자어로 고치면서 호동(狐洞)으로 바뀌었다.


▶ 마을의 옛 지명

- 갈림보(보) : 갈림보들에 물을 대는 보. 두곳으로 갈라져 흐름.

- 깟밭태(들) : 욋등 남동 쪽에 있는 들. 지금 광주교도서 앞에 있는 들.

- 대문산(마을) : 문산 큰 마을. 밀매=민메

- 독산(마을) : 문산=밀메=민메

- 드렁골(골) : 문산 북쪽에 있는 들. = 덜렁골

- 마대산(산) : 요롱골 남쪽에 있는 산. 문흥동 제일 끝에 있는 산. = 마지까끔 = 마디산.

- 모개시암(우물) : 원지시암 윗쪽에 있는 우물. 광주교도소와 문산사이에 위치. 모기가 많아 모기시암이라고도 함.

- 모래걸(논) : 모개시암 아래쪽에 있는 논. 비가 오면 갈림보에서 물이 넘쳐 넘어와 모래가 많았음.

- 문산(마을) : 문흥동에서 으뜸되는 마을. 밀매=민메=대문산.

- 바느실(들) : 포사막굴 아래쪽에 있는 들

- 부남실(들) : 송정북쪽에 있는 들. 지금 금호아파트 뒤편

- 석시낭골(골) : 독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 중국 진나라 석숭과 견줄만한 부자가 날 명당이 있다함.

- 송정(마을) : 문산 서쪽에 있는 마을. 소나무 정자가 있었음.

- 수용소(마을) : 물고래들 서쪽에 있는 마을. 1.4후퇴시 피난민 수용소가 있었음. =정착촌

- 송구래(들) : 평교 남쪽에 있는 들. 지금 대주아파트 자리.

- 여술(마을) : 호동. 여우가 많았다고 함

- 욋등(등) : 문산 동북쪽 길가에 있는 등성이. 기와를 구었다 함. =와야등. 밑에 고속도로가 있음.

- 요롱골(골) : 드렁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 =송영골.

- 원지시임(우물) : 모래걸 밑에 있는 우물

- 호동(마을) : 문산 남서쪽에 있는 마을. 뒷산에 여우가 깃들었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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